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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편지

오늘 같은 날에는-

by 고향사람 2006. 6. 21.
 

"로즈" 아줌마는 올해 나이 46세.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전형적인 필리피노다.

나이에 비해 좀 늙수룩 해 보이지만,

그와 비례해 눈치 코치는 이미 9단을 넘어 선지 오래다.


그러나 로즈 아줌마도 약점이 있으니,

바로 필리핀 전통 언어인 따갈로그에 비해

영어가 서툴다는 것이다.


덕분에 서툰 영어하는 이들끼리 만나 대화하려니 도통 손발이 맞지 않는다.

며칠 전 비 내리는 점심 때.

눈치 코치 9단인 로즈 아줌마가 점심 반찬으로 부침개를 만들었다.


그것도 즉석에서-.

우리 모두 신이나 맛있게 먹으면서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바삭바삭 구워지지 않았기 때문.

그러서 더 익혀 달라며

"웰 던 웰 던(Well done)"을 외쳐 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홧 홧(What)" -


옆에서 듣다 못한 친구가 "롱 타임"하고 소리쳐 대자

그제서야 로즈 아줌마, 한번에 알아들었다는 듯이 "오케이"를 연발하더니

주방으로 달려들어 갔다.


잠시 후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온 로즈 아줌마.

그 가 들고 있는 후라이팬에는 정말 먹음직스럽게 바삭바삭 구워진 부침개가 보였다.

스테이크도 아닌 부침개를 잘 구워 달라며 "웰 던"을 외치기보다는,

불에 오래 올려놓으라는 뜻인 "롱 타임"이 서로 간에 알아듣기 얼마나 편한가.

"궁하면 통"하는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영어 랍니다.


ㅋㅋㅋ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은

부침개 생각이 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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