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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 꿈꾸는 허수아비

시를 쓰면서-

by 고향사람 2008. 8. 3.
 

시를 쓰면서-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허수아비 꿈을.


들판 한 가운데 오도카니 서 있는 허수아비는 내 실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림자로 남기도 하면서 나의 존재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린다. 가을 한 철 반짝하는 짧은 삶에서 조차 소리 내어 참새 한번 �지 못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난 허수아비는, 초야(初夜)부터 마지막 날까지 풍찬노숙(風餐露宿)에 시달려야 하는 이방인이었다.

철지난 밀짚모자 눌러 쓰고 애써 무서운 표정을 짓는, 그래서 더 우습고 만만하게만 보이는 그가 오늘도 들판 그 자리에 서 있다. 욕심도 유행도 찾아 볼 수 없는 그에게서 나는 꿈을 보는 것이다. 아울러 거기서 나를 발견하고는 잠을 깬다. 악몽도 길몽도 아닌 그저 허수아비 꿈에서 내 인생을 반추(反芻)해 볼 뿐이다.

 


길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나는 책을 몇 권 썼다.

이 중에는 언론사에 있으면서 취재했던 기록을 모은 것도 있고, 꽃가게를 운영하는 아내를 위해 ‘꽃 이야기’ 라는 책도 냈었다. 그런가 하면 천방지축으로 생활해 온 우리 ‘가족사’를 정리한 글도 썼다. 또 납량특선에나 나옴직한 묘지를 참배하면서 어렵사리 숨은 이야기를 찾아 낸 ‘별난 묘지 이야기’라는 책도 냈다. 그러나 이번에 내는 책은 내 책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기록이 될 것 같다. 분류가 바로 시집이기 때문이다.

가장 쓰기 쉬운 게 시(詩)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가장 절제된 언어의 예술이 바로 시쟎은가. 그런 영역에 겁도 없이 뛰어 든 나를 두고 독자들은 뭐라고 할런지. 벌써부터 겁이 난다. 그러나 시에 대한 내 생각은 그저 단순할 뿐이다.


시는

너, 나 그리고 우리의 공통 언어요, 더불어 공통분모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난해한 언어, 전시(戰時)의 암호 같은 문장은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시험에 나오는 시, 반드시 외워야 점수를 따는 시. 그것은 차라리 공포의 대상이었던 경험을 대부분은 갖고 있다. 학창 시절의 일 말이다.

이런 경험을 겪은 탓일까 나는 ‘모든 시가 생활의 언어요, 노래가 되길 소망’했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동요가 늙어서까지 기억되는 이유도 ‘쉽고 밝은 언어들의 군상(群像) 때문이다’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몇 해 전부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 그리고 생활 속에서 늘 상 마주치는 단어와 문장들을 하나 둘씩 줍다보니 오늘 드디어 작은 집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집(詩集) 말이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 될 만한 작은 책이자, 바깥사람들로부터는 가장 흉이 될 오점을 남기는 모험일 수도 있는 일을 나는 병술년 겨울에 저질러 놓은 것이다. 무엇이든 지우고 싶은 계절에 만용을 부린 셈이 돼버렸다.. 그만큼 어떤 책을 낼 때보다 부담이 컷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시를 쓸 때 몸과 마음이 편치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상처 받은 조개가 가장 아름다운 진주를 생산한다는 말이 있듯이, 고난 중에 나오는 글이 가장 많은 진실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글 한 줄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그만큼 편하다는 얘긴가 보다. 이제 마지막 바램이 있다면 내 시를 읽는 이들 중에서

‘이 시, 나를 생각하면서 썼지’

하고 묻는 이가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그래 당신을 생각하면서 쓴 거야 맞아’

어깨를 으쓱하면서 장단을 맞추고 싶다. 이 각박한 세상, 내 시로 인하여 한바탕 큰 소리 내 웃어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본전은 뽑은 셈이 되지 않겠는가.

‘꿈도 야무지다’고 비아냥 좀 들으면 또 어떤가.

그저 ‘허 허 허’ 웃자고 사는 건데 말이다.


오늘 밤 나는 또 꿈속에서 허수아비를 만날 것이다.

그래서 함께 ‘꿈꾸는 허수아비’가 되련다.


                                                            2006년 겨울에


                                                              김 석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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