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촌-
전기도 없고
전화도 안 터지고
따뜻한 콜라 한 병 사 먹으려 해도
한 시간은 걸어야 하는
필리핀 깡촌
여기
산 속 길을 걷다
목이 말라 하늘을 쳐다보면
정글 볼로 찬 시골 총각
천국 닿을 만큼 높직한 부코 나무 올라타
금세 몇 알 떨궈준다
숨 넘어 간 이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천연 부코주스 마시고
속살까지 후벼 파 먹고 나면
간식 끝
깡촌이라서 좋다
지금도 깡촌에선-
30페소짜리 조리 신은 이도 없고
속옷 갖춰 입을 일도 없어
선글라스 쓰고
고어텍스 등산화 신고 있는
객을 부끄럽게 한다
깡촌이라서-
방사해 키우는 닭이 낳은 알도
사 먹을 수 있고
우유 대신 염소 젖도 얻어 먹는다
구운 샤깅(바나나) 맛도 알게 됐고
뱀 고기 맛있다 하는 이들과
오줌발 멀리 떨구기 시합도 한다
깡촌이라서-
필리핀 깡촌
임신 팔개월인 부인이 개울물에 몸 담고
묵은 빨래하고
일곱 살 짜리 소녀는 늙은 말을 타고
산을 넘는다
깡촌이
무릉도원 처럼 보이는 것은
나도 촌놈이라설까
가물가물한 옛 기억 살려 주는
필리핀 깡촌이 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