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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노모 &50대 아들 이야기

아! - 엄니, 우리 엄니

by 고향사람 2015. 9. 28.

우리 엄니

한옥순님께서 9월20일 새벽 5시경 고이 잠드셨습니다.

대형 교통사고와 이 후유증으로 생긴 듯한 지병 신부전증으로

노년에 불편한 삶을 사셨지만 늘 담대 하셨던 울 엄니.

 

세상을 하직 하실 때는 36킬로그램도 안 나가는 몸무게로

마지막 삶을 지탱하시다 그예 그 끊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향년 82세였습니다.

 

작고하시기전까지 약한 몸으로도 잘 버티시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감기 기운에 소화까지 잘 안된다며

자주 약을 드셨으나 병세는 더 나빠졌습니다.

병원에 가셔 링거에 감기 주사까지 맞았으나 몸 컨디션이 좋아지기는 커녕

더 악화되면서 식음을 전폐 하다시피 했습니다.

 

이튿날 저녁부터는 정말 죽도록 앓으시더니

동트기 전인 새벽 5시경 운명하시고 말았습니다.

돌아 가시기 직전부터 손발이 더 차가워 지고

온 몸이 쑤시고 저리다고 하셔 많이 주물러 드렸는데도

나아지는 건 없었습니다.

 

엄니 혼자 감당할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왔는지 아님 운명을 직감 하셨는지

-나 살릴 생각 말아라는 유언아닌 유언 후 몇 시간 뒤 눈을 감으신 겁니다.

 

사실 병원 응급실로 모시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평소부터 어머님은 집에서 잠자듯 숨을 거두길 원하셨고

또 이번에 입원하게 되면 등에 구멍을 뚫고 폐 속 물을 뽑아야 하고

더불어 투석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엄니인지라

응급실 행을 적극 거부하셨던 같습니다.

 

날이 밝으면 엄니 의견 무시하고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 갈 참이었는데-

그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운명하시니

자식 입장에서는 더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되짚어 생각해 보면 울 엄니가 돌아 가시게 된 것은

천운, 아니 어머니의 소원대로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니는 며칠만 앓다 자는 듯이 운명하는 것을 소원하고 계셨는데

그대로 원을 이루셨고 그것도 병원 침상이 아닌 집 안방에서 운명하셨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집 안방 자신의 침대에서 잠자듯 운명하시는 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또 울 엄니는 안식일교인이신데 그 날을 피하고

민족 대 명절인 추석 일주일을 앞두고 운명하셔 벌초 때 온 아들과 사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명절을 쇠는 이들에게 피해없이 운명하셨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가을걷이가 시작되지 않아 농촌임에도 일상이 바쁘지 않았고

가을 날씨는 더 없이 좋아 조문객들의 왕래를 편케 했습니다.

필리핀서 일하는 집사람도 휴가차 한국에 나와 있어 고생을 덜하게 했습니다.

 

울 엄니는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 수의를 장만해 두었을 뿐 아니라

아버님 사후인지라 당신 조문객이 적을 것을 짐작하면서 모아 둔

장례비가 1천만원이나 됐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생전에 아버님과 같은 날에 돌아가시기를 소원하시더니 정말 그 소원 대로

돌아 가셨습니다.

아버님은 2004년 8월8일에 운명하셨는데 어머니 역시 음력 8월8일에 돌아 가신 겁니다.

 

돌아가신 시간도 새벽이어서 만 3일장을 치를 수 있었는데 이 역시 놀라운 섭리가 있었습니다. 필리핀서 사업하는 막내 아들과 외사촌 아우가 있는데 이들은 필리핀서도 맨 아랫섬인 민다나오에 있는터라 자칫하면 장례 일정에 맞춰 귀국할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제수씨까지 필리핀에 가 있던 터라 더 그랬습니다. 그런데 엄니께서 새벽에 별세하셔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으며 덕분에 장례식 일정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날씨 역시 도움을 줬습니다.

장례 이틀째 아침에는 몇 십 미터 앞을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해

그 이튿날에 있을 발인식 시간이 일러 은근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발인과 하관이 있던 날 아침은 얼마나 쾌청하게 갰는지

그리고 선산 묘소 방향이 서쪽이어서 조문객들은 오전의 강한 햇빛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이 부탁한 햇고추를 사서 곱게 가루내 보관해 두고

내년에나 먹을 당근과 양파까지 다 파종해 놓으셨는가하면

오래된 냉장고를 버리고 새것으로 장만해 두셨습니다.

아마도 고향집을 지킬 큰 아들을 위해 그렇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무엇 하나 넘치거나 부족함 없이 단도리 잘 해 놓으시고

하늘이 정해 준 운명 처럼 그렇게 아버님 곁으로 떠나신 울 엄니-

그 엄니가 오늘따라 유난히 그리워 집니다.

 

물론 위로 받기 위해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인 해석으로 자아도취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연 같은 필연을 여러번 경험하고 보니 정말 우리 엄니 사망은 잘 짜여진 하늘 운명의 각본대로 진행이 됐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게 됩니다. 이제 아버님 묘소에서 두 부부가 다시 합방하였으니 예수님 오실 때까지 좋은 꿈을 꾸시고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이금 이 순간 두 분이 보고파 미칠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두 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 고난풍파를 잘 견뎌 나갈겁니다.

끝까지 돌봐 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울 엄니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