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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노모 &50대 아들 이야기

수구초심(首丘初心)

by 고향사람 2015. 8. 15.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합니다.

 

 

울 엄니-

팔순을 넘긴 연세에 몸과 마음이 쇠하면서 요즘 기력이 부쩍 줄어

이웃집 마실을 다니기도 불편해 하십니다.

 

10여년 전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됐었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까지 버티셨는데-

당시 약물 과다 복용탓인지 신장(콩팥)이 나빠져 이젠 투석을 해야 할

정도로 악화 일로에 처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40킬로그램도 안나가는 몸무게에 갓난아이 같은 손목

그 몸으로는 링거주사도 감당키 힘든데 일주일에 두세번씩 피를 걸러 낸다는 것은-

엄니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투병생활이 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합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계신 터라

울 엄니는 요즘 이렇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투석을 받게 되기 전에 영면(永眠)케 해 달라고 말입니다.

 

지난 8일이 아버님 기일이었는데 이날 이후 엄니는 더 힘들어 하십니다.

생전의 아버님 생각에

더불어 고향은 얼마나 그리울까 싶어져

기일을 맞아 집에 들른 막내아우에게 어머님 고향산천 좀 구경시켜 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처음에는 싫다고 괜찮다고 손사래질만 하시던 울 엄니.

막내아들과 제수씨 그리고 조카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저녁나절 환한 모습으로 돌어오셨습니다.

사람과 건물 논밭등은 알아 볼 수 없었지만 산천은 그대로더라며

한참을 흥분된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이야기 해 줍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도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데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진작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앞으로는 엄니와 자주 외출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피할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울 엄니 만큼은 더 이상 아프지 말고 고이 잠드셨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