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이 어디메뇨’하니 ‘대문 밖이 저승이더라’는 대답이 들렸다고 합니다.
나와는 영원이 상관없을 것 같은 게 저승이지만 막상 사건을 당하고 보면
‘문 밖이 저승’이라는 말이 실감 날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도 부지불식간에 운명을 달리 하신 바람에
‘저승’ 운운할 시간도 갖지 못했었습니다.
아버님은 우리 가족이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을 때 교통사고로 돌아 가시는 바람에
겨우 발인식에서 영면(永眠)하신 얼굴이나마 뵐 수 있었고
다행이 어머님 임종 때는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 장례식 때는 73세의 젊은? 연세로 작고 하셨기에 운구를 꽃상여로 한 반면
어머님은 10년이나 더 사시며 호상(好喪)으로 삶을 마치신 까닭에 리무진으로 마지막 길을 모셨습니다.
어머니 생전에는 외제차 한 번 제대로 못 태워 드리고(물론 필리핀에 계실 때는 많이 타셨지만 말입니다)
돌아가신 연후에야 리무진을 태워 드린 게 못내 죄스럽기만 합니다.
좀 더 사셨으면 정말 좋은 차 많이 태워 드리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팔순 노모 &50대 아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감 예방주사 맞을 일 없는 울 엄니 (0) | 2015.10.10 |
---|---|
어머님 흔적은 여전히 살아 있고- (0) | 2015.10.02 |
엄니 선물을 대신 받으며- (0) | 2015.09.30 |
아! - 엄니, 우리 엄니 (0) | 2015.09.28 |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지만- (0) | 2015.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