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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노모 &50대 아들 이야기

앉아서 십리 서서 백리를 본다?

by 고향사람 2015. 8. 14.

-참깨 잎새에 벌래가 돌아 다닐겨. 살충제 한 번 뿌려야뎌

팔순 넘은 울 엄니한테 이 말을 들은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며칠전에는

-참깨 여문게 있을겨. 대가 누런 빛이 돌거든 낫으로 베어와.

더 익으면 다 쏟아지니께.

 

 

참깨 밭에 나가 보니 정말 아랫단에 검으스레 익은 것이 보였습니다.

 

-여주도 호박도 많이 익었을겨. 그것도 따오고.

-가지와 오이는 늙은 것도 많겄다.

 

엄니 말씀을 듣고 밭에 나가보면 그대로입니다.

몸이 불편한 뒤로 밭에 나가는 것을 말려 엄니는 집에만 계시는 편인데

하루에 몇 번씩 밭에 나가는 나보다 더 정확히 상황을 알고 계십니다.

정말 앉아서 십리를 보고 서서 백리를 꿰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엄니는 밭에 다니는 나보다 곡물 상황을 훨씬 잘 아니 이게 웬 조화래유.

내가 놀라는 표정으로 물으면 엄니는 암시롱 않게 대답합니다.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살았는디 그것도 모른다냐. 니도 애정을 갖고 열심히하다보면

자연스레 알아질겨.

 

당근을 심고 그 위에 볏집으로 해 가림막을 설치해 뒀는데

난 열심히 물만 뿌려줬지 싹이 났는지는 확인도 않고 있었는데

엄니가 또 묻습니다.

 

 

-당근 싹이 났을겨. 볏집 걷어 내고 확인혀봐.

 

엄니 말씀을 듣고 설마- 하면서 텃밭에 나가 확인해 보니

정말 당근 싹이 보기 좋게 나 있었습니다.

며칠 늦었으면 싹이 너무 연해져 햇살에 다 타죽을 뻔 했습니다.

 

몸이 불편해 농삿일을 직접 하지 못하지만 작물 상태는 앉아서도

훤히 꿰고 있는 울 엄니.

정말 앉아서 십리 서서 백리를 보는 분인 것 같습니다.

-엄니 정말 대단휴. 긍께 오래오래 사셔야 한당께유.

내가 감탄해 낸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