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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노모 &50대 아들 이야기

우리 엄니- 박사님도 못 당하죠

by 고향사람 2009. 6. 10.

며칠 전부터 손이 저리고 기운이 하나도 없다는 울 엄니.

어제는 맘먹고 한의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오기 전에 보약 한 재 지어 드릴 참으로 말입니다.


일부러 읍내까지 나가 가장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

원장 박사님한테 진맥하고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박사라는 원장님한테 진료를 받는데 울 엄니 암 소리도 안하시는 겁니다.


원장님이 ‘어디 편찮은데 있으세요’해도

‘소화는 잘 되세요’

‘허리는 안 아프시고요’ 라고 물어도 묵묵부답입니다.

옆에 있던 내가 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근디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 같던 엄니가 그 순간에 딱 한마디 했습니다.

‘워디- 진맥을 했으면 내 아픈 곳을 소상이 일러보소’

이 말 한마디에 원장님은 입이 벌어졌고 게임도 끝났습니다.

그 용하다는 원장님이 ‘허참’소리만 연발했으니까 말입니다.


이날 33만원에 보약 한 재 지었는데 계산을 하려고 하자 엄니가 내 손을 잡아당깁니다.

‘잠깐 기다리라’는 겁니다. 고모 떡도 싸야 사먹는다고-

깎아주지 않으면 그냥 가겠다는 겁니다. 결국 원장이 나와서 현금을 조건으로

1만원 깎아주고 알약으로 된 소화제 한 통까지 서비스로 얻은 뒤에야 계산이 됐습니다.


이때도 박사 원장님은 ‘허-참’ 소리만 연발했습니다.

‘진맥 했으면 내 아픈 곳 좀 소상이 일러보소’라는 말에 기가 꺾였던 원장님이신지라

울 엄니가 하자는 대로 따랐습니다. ‘허-참 허- 참’ 하면서 말입니다.

나와 계산대 아가씨는 서로 두 분 눈치만 살폈고 말입니다. 


암튼 울 엄닌 웬만한 박사도 못 당하는 대단하신 분이랍니다.

그러니 그 엄니 뱃속에서 나온 나도 늙어선 한 몫 하지 싶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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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에 아들유? 장가는 들었슈-’



‘그 늙은이 눈이 삐어도 한참 뼜지’

울 엄니는 오늘까지도 나를 보면서 두런두런 거리십니다.


‘아 글씨 너더러 장가 갔냐구 안허더냐 말여’

‘그게 뭔 소리래유’

‘긍게 말여 어저께 약지러 읍내 나갔을 때 말인디-. 나랑 차를 기다리던

그 늙은이 있었쟎여. 아 그 늙은이가 너를 보고 아들이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밑도끝도 없이 한다는 말이 장가 들였냐고 허잖어’

‘그래서 뭐랬슈’

‘시방 손자가 대학생이라고 그렸지’


이 말씀을 듣고 가만히 그림을 그려보니 해답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어저께 몸이 천근만근이나 되는 것 처럼 무겁다는 엄니를 모시고

용하다는 한의원에 가서 보약을 한 재 지어 드렸는데 그 때 농어촌버스를 기다릴 때

일어 난 사건??? 인거 같았습니다.


지난 겨울 사고로 타고 다니던 차를 폐차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차도 없이 엄니를 모시고 다니는 내가 그 노인한테는 장가 못간 농촌 총각으로 보였나 봅니다.

장가도 못간 노총각이 노모를 모시고 다니는 것이 그 노인 눈에는 짠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내는 총각으로 봐 준 그 노인이 고맙기만 한데-

울 엄니는 당신 때문에 마눌과 떨어져 기러기 남편으로 사는 내가 평소에도 안쓰러웠는데

이날 그 노인이 장가 못 보낸 아들로까지 여겨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하하하 엄니는 그게 뭐 속상한 일이라고 날마다 두런거리고 다녀유.

근디 엄니 정말 내가 장가 못간 총각처럼 젊어 보이긴 혀유-’

그나저나 이런 사실을 마누라가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은근히 궁금해집니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