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

웃는 돼지

by 고향사람 2007. 1. 4.

서울 탑골공원 뒤 낙원상가 골목에는 돼지머리를 파는 상가가 즐비합니다.
이곳에는 고사(제사)용 돼지머리를 비롯 돼지족발과 순대,
심지어 돼지 껍데기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이 곳은 항상 비릿기리한 냄새가 진동해 비위 약한 행인은
코를 가리고 종종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 나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곳 상점에 진열돼 있는 돼지머리는
하나 같이 웃고 있다는 것입니다.
몸통이 잘려나가 흉물스런 돼지머리가 웃고 있는 모습은 사뭇 엽기적입니다.
하지만 얼굴이 말끔히 면도된 채 웃고 있는 돼지 얼굴을 보노라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보는 이도 그냥 웃음이 흘러나옵니다.
죽은 돼지한테는 미안하지만 그 웃는 모습이 그만 다른 이도 웃게 합니다.

과연 이 돼지는 웃다가 죽은 것일까요.
이 길을 지나다니면서 궁굼해 죽을 뻔 하다가
그예 한 가게 주인한테 그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왜 돼지들이 웃냐고요’.
주인은 답 대신 돼지처럼 웃기만 했습니다.
나도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그 후 또 다시 그 길을 지나다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고사 지내는 이들이 웃는 돼지를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죽은 돼지 머리를 잘라 털을 태우고 물에 푹 풀린 다음 면도를 한 뒤
입과 눈 꼬리를 올려 웃는 모양새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돼지 얼굴이라도 실상은 별로 보고 싶지 않을 만큼 못난 편인데
죽은 돼지 얼굴이 찡그리고 있으면 제상에 올리기가 꺼림찍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 상인이 억지로 웃는 모습을 만들어 놓으니 그 뒤부터는
웃는 돼지 얼굴만 찾아 이젠 모든 돼지머리가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는 복 돼지해를 넘어 6백년만에 찾아 온 황금돼지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황금돼지라 해도 그 얼굴이 찌그러져 있거나 근심이 넘쳐흐르면
누구라도 싫어 할 것입니다.

돼지 얼굴도 얼굴이라고 웃는 것을 찾는 세상인데
하물며 인간의 얼굴이 늘 찌그러져 있으면 되겠습니까.  

웃는 돼지 아니 웃는 사람
그 사람이 우리가 되는 그런 한 해가 되도록 합시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화- 이- 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