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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벼르던 은행 털고 보니 겨우 10만원-

by 고향사람 2006. 11. 18.


오늘 벼르고 벼르던 은행을 털었습니다.
남이 봐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큰 모자 푹 눌러쓰고,
장갑에 운동화까지 신고 은행이 잘 보이는 담을 올랐습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짭짤한 수입을 위해서는 모험도 불사한다는 게 평소 신조인지라
체면도 이목도, 심지어 경찰도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아름드리나무에 찰싹 붙어 조심스럽게 올라간 뒤,
평소 눈 여겨 보아 두었던 은행을 향해 발자욱을 떼며
순간적으로 기합을 넣었습니다.
‘이 야 아 하-’

내 소리와 동작에 놀란 듯 주변이 소란해 졌습니다.
이어 우두두둑-
아마 그런 난리도 보기 힘들 겁니다.
터지고 깨지고 구르고
하지만 이왕 벌인 일입니다.
도중에 그만 둘 수도 없어 싹쓸이하기로 맘먹었습니다.

긴장 탓인지 이마에 땀이 맺히고, 어깨와 모자엔
치열했던 몸싸움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지만
돈 때문에 참을 만 했습니다.

불과 10분도 안돼 상황은 종료 됐고
이제 사태만 수습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화?가 올 순간입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벌써 눈치를 챈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이들 역시 자기 몫을 챙기겠다는 듯이 내 판에 은근히 끼어듭니다.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어 내 수입만 대충 챙겨 자릴 떠야 할 판입니다.

덕분에 손길이 두 배로 빨라지고 다음 동작도 민첩해집니다.
그래도 묵직하게 두 어 자루 챙겼으니 이만 하면
오늘 수입은 그런대로 짭짤할 것 같았습니다.

이 날 오후 한 숨 돌린 뒤 말끔히 세탁한 은행을 놓고
전화를 했습니다.
요즘 은행 값 어떠냐고요
그랬더니 중국산 때문에 큰 값 안나간다며
한 10만원 정도 쳐 주겠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요란한 복장으로 나무 꼭대기 까지 올라가
흔들고 발로차고하며 원맨쇼한 은행털이가 겨우 10만원이라니-
그래서 혼자 웃다가 이웃과 친척끼리 나눠 먹기로 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은행 턴 건 그래도 참 잘 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