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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발꿈치 각질을 제거하는 나이에-

by 고향사람 2006. 11. 13.


내 어릴 적,
부모님은 겨울철 밤에 가끔씩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 가득 담아와
두발 담그고 불린 다음, 가위나 사금파리 혹은 돌멩이로
발꿈치 각질을 벗겨 내곤 하셨습니다.

물에 퉁퉁 불은 발꿈치를 가윗날로 긁어내면
허연 각질이 밀려 나오는 모습이 신기해,
나도 해 보겠다며 흉내를 내기도 했지만
붉으스름한 내 발꿈치에서는 '때'만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애들은 이런 게 일어나지 않는다’며 웃음만 보태시던
주름진 부모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한데, 나도 모르게 그 애가 어른이 돼
오늘 목욕 후 발꿈치 각질을 벗겨 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신문지에 두 발을 올려놓고 가위대신 칼을 사용해
발꿈치 각질을 벗겨보니 살살 밀리는 재미가 솔솔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깨끗하게 다 벗겨 내겠다는 욕심이 더해져
그만 발꿈치 생살까지 베어내고 말았습니다.
물에 불은 살이라 칼날이 쉽게 살 속으로 파고 든 것 같습니다.

금새 붉은 피가 줄줄 흐르고, 따끔거리는 고통 때문에
눈물까지 빠질 지경이 됐습니다.
소독약을 찾아 바르고 밴드까지 붙였지만, 신발을 신을 때마다
상처부위가 닫는 바람에 편하게 걷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각질을 벗겨내는 부모님을 보면서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 나이가 그 나이가 돼 버린 것입니다.
아직도 마음은 ‘붉은 피’ 처럼 젊기만 한데,
몸은 벌써 허옇게 일어나는 '각질'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가는 세월 가래로 막고 오는 백발 호미로 막아도
세월이 먼저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는 선인들의 말이 아니래도
요즘-
빠른 세월 실감하며 삽니다.

각질 벗기려다 생살까지 벗겨 버리는 실수 처럼
지나온 내 인생살이에서의 시행착오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 때마다 붉은 피를 보는 것 같이 안타깝고 슬펐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발꿈치 상처가 다 나을 때 까지만이라도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사랑해 준 귀한 분들을 생각하는
그런 아름다운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데-
이것 마져도 금새 잊지나 않을 런지 모르겠습니다.

각질을 벗겨내야 하는 나이가 됐지만
아직도 마음이 영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