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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관'뚜껑에서 낮잠을-

by 고향사람 2006. 8. 29.


중학교 3학년 때쯤의 일로 기억됩니다.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끝내고 집에 와 쉬는데,
말복 더위를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시원한 밤나무 그늘아래로가 낮잠을 청하기로 하고 적당한 깔개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물건이 보이지 않아 헛간까지 뒤지던 중,
구석에서 널찍한 나무판 하나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칠이 벗겨지고 약간의 흙이 묻어 있었지만 크기가 내 키와 딱 맞았고,
나무폭도 한 사람 눕기에 적당해 보였습니다.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 밤나무 그늘아래 널빤지를 깔고는 낮잠을 청했습니다.
그렇게 얼마간 잠들어 있었을까.
누군가가 내 몸을 흔드는 바람에 잠이 깨고 말았습니다.
눈을 떠 보니 아버지였습니다.

“얘 이 녀석아. 왜 하필 관 뚜껑을 깔고 자니. 꿈자리 사납게 시리”

“관 뚜껑이라뇨”

“그려 네가 깔고 잔 판대기가 바로 관 뚜껑여. 보매기(보막이) 때 쓸려고
내가 주어다 논건데. 그걸 어떻게 찾아 내 가지고선-”

순간 잠이 다 달아나고 온 몸에 소름까지 끼쳤습니다.
그제서야 나무판 길이나 폭이 한 사람 눕기에 꼭 맞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아버진 부정타게 그런 물건을 집안에 갖다 놓으면 어떡해요”

집안으로 들어가시는 아버지 뒷모습을 보면서 원망을 터뜨려 보았지만,
대답은 더 원망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 관 뚜껑임자가 바로 몇 년 전 정신병을 앓다가 죽은 건넌마을 처녀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이후 나는 아무리 좋은 널빤지가 있더라도 절대 그 자리에 앉거나
눕지 않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관뚜껑이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한 여름 폭염이 계속돼도, 이 때 생각만 하면 온 몸이 오싹해지는 것이
무더위 걱정은 덜고 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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