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산네 이야기

어? 호박이 어디갔지

by 고향사람 2006. 5. 23.

 

산후조리에 호박이 좋다는 얘기는 애 아빠가 되면 다 알게 되는건지,

나 역시 용케 호박 한통을 구했다.

 

병원에서 퇴원한지 이틀만이다.

듣기로는 호박속에 꿀을 넣고 푹 삶으면 두 사발 정도의 물이 나오는데,

산모에게는 특효약이라는 것이다.

 

일단 호박 겉 껍질을 벗겨 내고 속을 파내는데 까지는 별 문제없이 해 냈는데

꿀을 얼마나 넣고, 물은 또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시골에 전화해 묻자니 공처가 소리듣기 십상이고,
처가에 연락 하자니 아내 체면이 말이 아니니 대충 감 잡아 흉내를 낼 수밖에.
 

우선 창고에 있던 들통을 꺼내와 깨끗이 닦고 물을 적당히 부은 다음
호박속에 꿀을 넣고 가스렌지 위에 올려 놓으니 대충 일을 끝낸 기분이 든다.

공처가 기질 때문일까,

생전 처음 아내에게 특별한 음식을 마련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발동 했는지

설거지 까지 마처 놓고 차 한잔 나누는 멋이 유별 났다.

'약 달이듯 밤새 끓여야 될것' 이란 아내의 말이 아니어도

가스불을 줄여 놓고 아기 얼굴이라도 쳐다보며 신약(?)을 만들어 줄 참이었다.

그러나 어디, 세상사 내 맘대로 되는게 하나나 있나.

회사일이 피곤 했는지 아니면 호박 씻는 일이 힘들었는지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아니 깨어보니 아침 이었다.
 

"어마, 깨스불"
"아차. 호박"

  아내와 내가 일어 나면서 동시에 지른 소리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까스 소리를 지르는게 순서.

그러나 이날은 완전히 엉뚱한 소리가 나온 것이다.

어디 이 소리 뿐이었나. 20초도 안돼 나는 자다가 봉창 뚫는 소리를 또 내고 말았다. 
"어. 이 안에 있던 호박 어디갔어"

밤새 끓다 못해 시커멓게 타버린 호박은 거무틱틱한 가죽(?)만 남겨 놓은 채

어디론지 사라저 버렸고 뻘겋게 달아오른 들통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강산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보 강산이-  (0) 2006.05.31
아들 낳으니 태몽도 좋더라만-  (0) 2006.05.27
첫 옷이 중고품이라니-  (0) 2006.05.22
거꾸로 큰 아이  (0) 2006.05.21
강산네 이야기 책 '서문'  (0) 200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