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
시골에서는 할 일이 많습니다.
추수는 물론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장도 그렇고 난방용 기름이나 장작도 마련해 둬야 합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9월 엄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다고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하고 있습니다.
노루꼬리 만큼 짧은 가을 해는 마음만 급하게 하고
손에 익숙지 않은 일들은 실수만 반복하게 합니다.
울 엄니는 이런 일들을 어찌 그리 용케도 하셨을까-
생전의 엄니 동선(動線)을 따라다니다 보면 그저 감탄만 나옵니다.
항상 계절 보다 한 발 앞서 모든 것을 준비하시던 울 엄니.
당시는 그게 그런가 보다며 눈여겨 보지도 않았었는데-
지금은 후회가 막급합니다.
진작에 배워둘걸 하는 아쉬움 때문입니다.
만추(晩秋)를 지나 이제 입동(立冬)에 이르렀건만-
아직도 내 가슴속엔 파랑색 뿐인 것은 작고하신
엄니 때문에 생긴 푸른 멍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엔 엄니가 심고 가꾼 배추와 무로
내 생애 첫 김장을 담가 보려고 하는데-
어찌될지 모르겠습니다.
이웃에서 나눠준 김치가 잔뜩있지만 엄니 유산 처럼 보이는
무와 배추를 그냥 둘 수 없어 큰 맘 먹었습니다.
김장 담그다 엄니 생각에 가슴만 더 시퍼래 지는 건 아닌지
혼자 생각만 깊어 집니다.
긴 가을 밤 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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