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임대를 주었던 고향 밭을 올 봄부터 내가 경작하게 됐습니다.
임차인이 개인사정으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밭을 내 놨기 때문입니다.
봄에 갑자기 밭을 맡고 보니 남에게 재 임대를 할 시간도 없어
내가 농사를 지어 보기로 했던 겁니다.
가족들이 외국에 있는 까닭에 자주 출타를 해야하는 터라
쉽게 지을 수 있는 농사가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과일나무를 심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무래도 과일나무를 심으면 잔손이 덜 가고 장기간 집을 비워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체리나무 65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늦은 봄이 되자 밭둑과 길가에 봉숭아 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것이 점점 퍼져 어느날부터는 밭에도 봉숭아 천지가 돼 버렸습니다.
먼저 농사를 짓던 임차인이 봉숭아를 많이 심었었나 봅니다.
그것이 씨를 떨어 뜨린 것이 봄에 싹이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봉숭아가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먼저 농사를 지었던 사람의 품성이
참 좋은 이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밭에 봉숭아를 다 심다니-
얼마나 여유로운 모습입니까.
그 생각이 드니 봉숭아를 뽑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대로 두고 있는데 어느날 엄니가 밭에 나와 보시더니
봉숭아를 다 뽑아 내라는 것입니다.
꽃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엄니인지라 의외였습니다.
하지만 엄니는 꽃은 꽃밭에 있어야 하고 밭에는 곡식이 자라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셨습니다.
가만 들으니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아 길가 봉숭아 몇 개만 남겨 놓고는
따 뽑아 냈습니다.
-그려 느그들은 자리를 잘 못 잡은겨. 밭에는 곡식이 자라야지.
그 자리에 참깨와 콩, 옥수수 참외 수박 등을 심었습니다.
지금도 밭에 가면 늦게 돋아 난 봉숭아 싹들이 이곳저곳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것까지는 뽑아 내고 싶지 않아 모른체 하고 있습니다만
밭에다 왜 봉숭아를 잔뜩 심었었는지-
먼저 농사지은 사람의 속내에 대한 궁금증은 모른체만 하고 있기가 그렇습니다.
언제라도 만나게 되면 꼭 물어 볼 참입니다.
밭에 봉숭아를 심은 그 이유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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