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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노모 &50대 아들 이야기

조루

by 고향사람 2015. 5. 17.

 

아침 일찍 텃밭에 다녀오신 엄니께서 부르십니다.

- 애비야 다른 일 없으면 조루 좀 사오그라.

 

조루^^

언뜻 생각하니 웃음이 묻어 납니다.

하필이면 조루일까.

민망하게 시리^^

 

엄니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전거를 타고 근처 철물점을 찾았습니다.

부지런한 안주인이 일찌감치 가게 문을 열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 줍니다.

 

-아줌니. 거 뭐시냐 조루 좀 줘유.

조루 치료약도 아니고 무조건 조루를 달라고 해대는 나도 우습고

아무시롱 않게 큰 거유 작은 거유하고 되묻는 가게

안주인의 무표정도 아침 분위기하곤 영 아니었습니다.

 

-물은 잘 나오쥬.

안 물어 봐도 될 것 까지 묻는 내 의도와는 달리

아줌니 대답이 시원합니다.

 

-쭉 쭉 잘 뻗어유.

 

집에 오자마자 사전을 찾아 봤습니다.

정말 이거 이름이 조루 맞아 하는 의심이 솟았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리 뒤져봐도 조루라는 단어는

조루[早漏,弔樓,雕鏤] - 성교를 할 때 남자의 사정이 지나치게 빨리 이루어짐.

이라고만 나와 있었습니다. 그것도 간단명료하게 말입니다.

 

- 그럼 내가 사온 조루는???

인터넷을 뒤져 봤더니

내가 사온 2천원 짜리 작은 조루는 그 단어 자체로만 쓰이지 않고

접두어가 붙어 다녔습니다.

 

가령 물뿌리는 조루,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조루가 일본식 표현인가 싶기도 해 이리저리 검색을 해 봤더니

그 어원을 밝힐 만한 자료가 있었습니다.

 

* 물뿌리개 : watering can. 분수병이라고도 하며, 흔히 나이 지긋한 분들은 조루 또는 물조루 라고도 쓰시는데, 이는 포루투갈어인 jorro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말이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본식 단어를 굳이 쓸 이유는 없겠다.

 

결국 조루는 우리말로 물뿌리개 분사기 물조리개라고 표현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울 엄니랑 철물점 아주머니하고 조루 얘기를 하다보니

도둑놈 제발저리다고 내 조루가 동네방네 소문 난 줄 알고 은근 걱정했습니다.

아직 마눌밖에 모르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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