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텃밭에 다녀오신 엄니께서 부르십니다.
- 애비야 다른 일 없으면 조루 좀 사오그라.
조루^^
언뜻 생각하니 웃음이 묻어 납니다.
하필이면 조루일까.
민망하게 시리^^
엄니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전거를 타고 근처 철물점을 찾았습니다.
부지런한 안주인이 일찌감치 가게 문을 열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 줍니다.
-아줌니. 거 뭐시냐 조루 좀 줘유.
조루 치료약도 아니고 무조건 조루를 달라고 해대는 나도 우습고
아무시롱 않게 큰 거유 작은 거유하고 되묻는 가게
안주인의 무표정도 아침 분위기하곤 영 아니었습니다.
-물은 잘 나오쥬.
안 물어 봐도 될 것 까지 묻는 내 의도와는 달리
아줌니 대답이 시원합니다.
-쭉 쭉 잘 뻗어유.
집에 오자마자 사전을 찾아 봤습니다.
정말 이거 이름이 조루 맞아 하는 의심이 솟았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리 뒤져봐도 조루라는 단어는
조루[早漏,弔樓,雕鏤] - 성교를 할 때 남자의 사정이 지나치게 빨리 이루어짐.
이라고만 나와 있었습니다. 그것도 간단명료하게 말입니다.
- 그럼 내가 사온 조루는???
인터넷을 뒤져 봤더니
내가 사온 2천원 짜리 작은 조루는 그 단어 자체로만 쓰이지 않고
접두어가 붙어 다녔습니다.
가령 물뿌리는 조루,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조루가 일본식 표현인가 싶기도 해 이리저리 검색을 해 봤더니
그 어원을 밝힐 만한 자료가 있었습니다.
* 물뿌리개 : watering can. 분수병이라고도 하며, 흔히 나이 지긋한 분들은 조루 또는 물조루 라고도 쓰시는데, 이는 포루투갈어인 jorro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말이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본식 단어를 굳이 쓸 이유는 없겠다.
결국 조루는 우리말로 물뿌리개 분사기 물조리개라고 표현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울 엄니랑 철물점 아주머니하고 조루 얘기를 하다보니
도둑놈 제발저리다고 내 조루가 동네방네 소문 난 줄 알고 은근 걱정했습니다.
아직 마눌밖에 모르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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