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팔순 노모 &50대 아들 이야기

똑똑해서 불편한-

by 고향사람 2015. 2. 22.

지난 연말 갑자기 몸이 불편해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셨던 울 엄니.

올해 들어서는 식사도 잘 하시고 외출도 자주 하신 덕인지

몸이 많이 좋아 지셨습니다.

 

 

혼자 보건소에 가서 혈압약도 타 오시고

5일장이 서는 날엔 동태랑 시금치 등 반찬거리 사 오는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

여든둘의 연세가 믿기지 않게 총명도 여전하십니다.

 

동네 집 전화 번호는 다 꿰고 계시는 것은 물론 이고

달이 바뀔 때 마다 오늘은 뉘 집 어른 생일인데-

하시면서 자식들이 내려 왔는지 모르겠다고 혼자 걱정이십니다.

 

새마을 금고와 농협, 혹은 우체국에 예금해 놓은 돈도

해가 바뀔 때마다 이율을 따져 돈을 옮기고

마을 이장이 분배해 주는 비료나 퇴비도 우리 집 논과 밭 평수랑 비교해서

부족하다 싶으면 당장 내려가 따지실 만큼 총명하십니다.

 

지난해 말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도

간호사가 빈병을 주고 오줌을 체크하거나

식사량을 물으면 엄니는 꼭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밥은 5분지 3정도 먹었구유. 오줌은 3분의 2컵 눴어유.

 

 

체크 때 마다 엄니 대답이 이런 식으로 나오니

하루는 간호사가 엄니한테 신신 당부를 하는 겁니다.

 

-할머니.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은 너무 어려워요. 그러니까

반 공기 드셨다거나 한 공기 다 드셨다고 해 주세요. 오줌량도 그렇구요.

우리 병원에서 팔순넘은 할머니께서 5분의 3이니 3분의 2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할머니 밖에 안계세요.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납니다.

그래서 나중에 엄니한테 말씀드렸습니다.

 

-엄니 엄니는 넘 똑똑해서 남을 피곤케 할 때가 있당께요.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좋은규.

 

하지만 울 엄니 그냥 넘어 갈 분이 아닙니다.

-즈그덜이 정확히 해야 한다기에 그런거지. 글구 말여. 그게 뭐 복잡혀.

난 지금도 여나문명이 하는 곗돈도 척척 계산해 내는디.

 

암튼 울 엄니 머리 좋은 건 아는디

나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따라 가지 못하니 이를 워쩐대유.

'팔순 노모 &50대 아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시 엄니가 한 수 위  (0) 2015.03.31
엄니와 나의 ‘관심’ 차이  (0) 2015.02.27
울 엄니한테 받은 세뱃 돈 10만원  (0) 2015.02.20
엄니의 꽃 밭  (0) 2014.06.13
어버이 날에-  (0) 2014.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