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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황톳집 짓는 일에 동참해 보니-

by 고향사람 2014. 12. 5.

‘모로 가도 한양에만 가면 된다’는 말-

이 말을 빗대어 ‘구들장 먼저 놓고 불 때며 집 짓는다’라고 하면

의아해 하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답을 내 놔야 할 것 같습니다.

-모로 가도 한양만 가면 되는 것 처럼 순서가 바뀌어도 집만 완성되면

그만 이라는-

 

11월 초부터 생각지 못한 프로젝트에 끼어 들게 됐습니다.

황톳집을 짓는 젊은이의 도우미가 됐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검색 중 전라도에서 황톳집을 짓는 다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도우미 두 명을 구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연락을 했습니다.

 

그러잖아도 황톳집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터고

더군다나 필리핀에서 전통 한국식 집도 짓고 싶었던 터라

깊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연락이 온 것은 내 기대와 반했습니다.

이미 도우미를 구했다는 겁니다.

 

좋은 기회 놓쳤구나 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틀 뒤 연락이 왔습니다.

같이 일하기로 했던 이가 개인 사정으로 돌아 갔다는 겁니다.

이 연락을 받고는 옷가지 몇 벌 챙겨 바로 출발했습니다.

4시간을 운전해 오후 다섯시 반에 황톳집을 짓는다는 젊은 이와 고흥에서 조우했습니다.

올해 나이 마흔넷, 막내 아우보다도 세 살이나 어렸습니다.

 

하지만 20대 후반부터 외국에서 여행 가이드 생활을 했는가면

이런저런 사업을 하면서 세상 물정을 다 알아버린

나 보다 더 정신 연령이 높은 그런 입지적 인물이었습니다.

황톳집 짓는 기술보다 세상 살아 온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게 내게는 더 큰

경험이 됐으니 말입니다^^

 

원래 3명이 같이 일하기로 했었지만

이 젊은이와 죽?이 잘 맞아 둘이서 집 짓는 일을 진행했습니다.

노가다 현장이 비만 오면 공휴일인지라 우리 역시 다를 바 없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은 녹동항이나 소록도 인근으로 드라이브를 하거나

해변의 근사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 기초가 놓이고 담이 가슴 정도 올라가자

이 젊은이는 문이나 지붕을 올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방 구들부터 놓는 겁니다.

집 외관이 완성된 뒤 구들을 설치하는 기존의 방식과 전혀 다른 겁니다.

이게 뭔 시추에이션-

하는 찰라 이 젊은이는 말합니다.

 

집 벽과 지붕까지 다 설치한 다음 폐쇄된 공간에서 구들을 놓자면

답답도 하거니와 나중에 불을 지피게 되면 흙 속에 남아 있던 수분이

일시에 빠져 나와 집 안에 수분이 넘쳐나 견디기가 힘들다는-

그래서 방구들을 놓고 불을 때면서 나머지 집을 짓는 다는 겁니다.

벽도 지붕도 없는, 그야말로 기초석 놓고 바로 구들을 만들어 불을 때니-

가끔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도 고개를 갸우뚱 거립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른분들은 철부지 젊은 이들의 객기인줄 알고

친절히? 지적을 해 주기도 합니다.

-거 말여. 구들은 집 다 지어 놓고 나중에 놓는 거시여.

나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배우는 입장인지라 유심히 지켜만 봤는데

겨울 초입에 불 때면서 집을 지으니 추위도 덜하고

목재 일을 하면서 나오는 조각 나무들을 처분할 수도 있어 여러 모로 좋았습니다.

 

처음에 불을 지필 때는 불길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연기가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온 몸에 불내가 밸 정도로 말입니다.

눈물 콧물 다 쏟아가며 며칠 불을 계속 때자 이제는 불길이 잘 빨려 들어 갑니다.

구들을 잘 놓았다는 반증입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좋은 것은 구들장과 구들장 사이의 틈에서 나오는 연기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어 그때그때 마다 틈을 메워 연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이번 황톳집의 특징 중 또 하나는 문틀을 짜지 않고 켠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문지방용 나무통을 아래에 놓고 양 옆에 기둥틀과 그 위에 평평한 나무판을 올려 놓으면 문틀이 완성된다는 겁니다.

깎고 다듬어 사각 틀을 짜 맞춘 뒤 올려 놓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셈입니다.

덕분에 목수 일이 없으니 품삯 절약에 시간까지 줄일수 있었습니다.

대신 문틀에 사용하는 나무는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튼튼한 것을 씁니다. 성문(城門)으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말입니다^^

 

 

황톳집 벽은 안방은 순수한 황토만 이용했는데 그 폭이 50센티미터를 넘습니다.

한번에 30-50센티미터 정도 쌓고 건조기간을 거친 뒤 다시 쌓는 방식을 이용했고

다른 벽은 벽에 나무 두 개를 한 뼘 정도 높이로 쌓으며 그 안팎에 황토를 채우는 형식이었습니다.

 

안벽 역시 그런 형태였는데 내부에 기둥을 세우지 않는 대신 이 벽이 그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나무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식이었기에 지붕의 하중을 소화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꺽쇠로 연결 고정을 시켰습니다.

황토벽은 잘 갈라지는 특성이 있어 볏집을 썰어 넣었고 그래도 틈이 생기면 그때마다 새 흙으로 갈라진 틈을 메우는 작업을 병행했습니다.

 

작업 시기가 초겨울인 만큼 황토벽이 건조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과

아침 작업 시간에 물에 갠 흙을 퍼 올릴 때 손이 엄청시린 것도

그리고 날이 궂으면 작업을 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지만

세상에 단 하나 뿐이 집을 짓는 다는 성취감은 각종 단점을 커버해 주는 유일한 위안이 됐습니다.

 

 

반면 ‘경험만한 스승이 없다’는 속담 처럼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알게 됐습니다.

집 짓는 시기가 너무 늦어 심적으로 부담이 되고 실제로도 흙이 얼거나

해 지는 시각이 빨라 건조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던 겁니다.

더군다나 올 겨울에는 비도 눈도 많이 내려 일을 못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집 짓는 일에도 하늘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항목도 추가된 셈입니다^^

 

다행이 일을 서둘러 서까래를 올리고 안방 상량까진 했지만

그 후의 일에는 동참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향에 계신 엄니가 편찮다는 연락을 받고 귀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쯤은 지붕이 다 올라가 내부 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참여 했던 황톳집 짓기.

덕분에 내 마음 속에는 지금 아흔아홉칸 기와 집이 지어 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집이 실제 내 손으로 지어지길 기대합니다.

그런 날엔 꼭 황톳집을 짓던 젊은이도 초청할 겁니다^^

                                     (-사진은 '그림으로 쓴 이야기' 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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