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

엄니의 수의(壽衣)

by 고향사람 2013. 12. 23.

안방 장롱위에 있던 낯선 상자가

엄니 수의(壽衣) 보관함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며칠 전입니다.

엄니 힘으로는 신문지 한 장 올려 놓기 힘든 장롱위인데-

작지 않은 상자가 통째로 올려 있는 것이 이상타 싶어 여쭸더니

몇 달 전에 장만한 엄니 수의라는 것입니다.

 

1백50만원 달라는 것을 깎고 싸게 샀다며

안방 장롱위에 올려 놓았다는 겁니다.

며느리가 상조회 회원으로 가입한터라 수의를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여러번 말씀을 드렸는데도 엄니는 당신 임종 전까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십니다.

 

몇 년전 장례비로 쓸 돈도 따로 저축해 놓고

이번에는 수의까지 당신 손으로 장만하신 것을 보니 마음이 더 허전해 집니다.

팔순을 넘긴 연세긴 하지만 아직 건강하신데-

엄니는 늘 임종을 염두해 두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니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시면서도

말씀은 여전히 ‘나 죽기 전에-’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속이 상합니다.

이번에 수의를 보면서도 그랬습니다.

 

‘엄니 이왕 산 것 딱 한번만 입기는 뭐하쟌유. 그렁께

내년 여름엔 자주 입으세유. 베로 지은 거라 무척 시원할꺼구먼유.

그 수의말유’

 

그럴때마다 엄니는 별 소릴 한다며 꿀밤이라도 먹일려고 합니다.

 

속이 상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수의를 보면 엄니 명이 짧아 질 것 같은 생각에

수의 상자가 눈에 띌 때 마다 멀리 가져다 버리고 싶어집니다.

인간 누구나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우리 엄니 만큼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는게

내 솔직한 욕심입니다.

 

-엄니 수의를 보니 그 욕심이 더 커집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아우에 그 형이 되려니-  (0) 2014.01.10
좀 벌레  (0) 2013.12.26
안부  (0) 2013.12.21
꽃상여 운구하던 날  (0) 2013.12.20
나무하고 군불 때고 -  (0) 2013.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