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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제발 밥 좀 먹자

by 고향사람 2013. 8. 7.

보름간 한국에 나갔다 온 외사촌 아우.

한국서 뭘 보고 듣고 왔는지-

갑자기 식탁 차림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멀쩡하게 먹던 밥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온갖 과일과 채소로 채워진 겁니다.

아침 먹으러 내려갔다가

밥 사발은 보이지 않고 과일만 차려져 있어

깜짝 놀라 헬퍼 한테 밥은 어디 있냐고 했더니

이게 아침 식사라는 겁니다.

 

-뭐시여. 시방 이걸 먹고 출근하라는겨.

내 말이 좀 컸던지 윗층에 있던 아우가 급히 내려 오더니

-형아 내가 오늘부터 과일과 야채로 식단을 차리라고 혔어.

그게 건강에 엄청 좋대.

 

그러냐 난 건강허니께 그냥 밥이나 먹을란다.

하고 수저를 챙기니 헬퍼가 난처한 표정입니다.

뭔가 집히는 게 있어

-너 아침에 밥도 안한겨.

고개를 끄덕이는 헬퍼.

 

-참말로 가지가지 헌다. 다음번에 한국 나갔다 오면

아마 야채죽이나 미숫가루 타 마시자는 소리 나오겄다.

궁시렁 거리면서 과일로 배를 채웠지만 이게 당체 아침 먹은 기분이 아닙니다.

 

-내 도시락이나 이리줘.

 

그런데 점심 때 밥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풀었더니

이건 또 뭔 시츄에이션입니까.

도시락 반찬이 다 과일과 야채고 밥통에는 옥수수와 삶은 감자 뿐이었습니다.

 

-이것들이 정말. 나를 토끼 취급하는겨 뭐여.

왜 멀쩡한 밥솥 놔두고 이 지랄덜여.

한국 사람은 밥 심으로 사는거 몰라.

어쨌든 제2 공장 근처에는 식당도 없어 점심까지 과일로 배를 채웠습니다.

 

하지만 뱃심이 있어야 일이 되지-

온 종일 배가 고파 냉장고만 뒤지다가 일과를 마쳤습니다.

설마 저녁까지야-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또 다시 야채 & 과일.

달라진게 있다면 우유에 콘프레이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외사촌 아우는 딱 한 끼 먹고 지방 출장을 갔고

집에 있는 나만 온 종일 과일에 야채만 먹은 셈입니다.

-지놈도 집에 와서 연속 세끼만 먹어보라고 그랴.

그럼 이게 식사가 되는지 아닌지 알겨.

 

오늘 아침까지 아우는 출장중이고

난 또 토끼밥을 먹고 나왔답니다.

헬퍼한테 밥 좀 먹자고 했더니 그랬다가는 작은 보스가 절 죽일??? 거라며

엄살입니다.

 

아그야 나도 보스여. 긍께 저녁은 꼭 밥으로 먹자.

사정하고 나왔는데- 집에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까지 과일만 먹다간 난 빠다이(사망)할지도 모릅니다^^

(관련 사진은 그림으로 쓴 이야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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