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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아이구 깜짝이야-

by 고향사람 2013. 5. 17.

먼 출장길에서는 가끔씩 걸려 오는 안부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비타민 처럼 생활에 활력을 줍니다.

대화할 만한 친구도, 아니 한국인도 없이 지내다 보면

한국말 좀 실컷 해봤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 친분 있는 한국인의 전화를 받으면 묵은 체증이 뚫리는 기분입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는 문자 한 통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미안 나 떠난다. 그동안 나를 받아 주고 보살펴 줘서 고맙다.

오랫동안 못 잊을 거 같다. 부모님도 고맙게 생각한다. 마할끼따.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내용의 문자가 뜬 겁니다.

발신인 이름도 없고-

이게 누굴까. 잘 못 전달된 문자겠지- 하면서도 자꾸 궁금증이 더해집니다.

더군다나 마할끼따라니- 마할끼따라는 말은 이 나라 지방 사투리?인

비사야로 ‘사랑한다’는 말이라서 더 궁금증을 증폭 시켰습니다.

 

이럴바엔 전화를 해 보자 싶어 발신인 번호를 눌렀습니다.

그러자 앳된 여자 목소리가 들립니다.

-누구세요 하자

상대편은 이미 나를 알고 있다는 듯 반갑게 ‘보스 마욘분딱’(굿모닝)하는 겁니다.

-아니 누구시냐니까요.

잇즈 미 제인

 

그제서야 쿵당거리던 가슴이 진정됐습니다.

까가얀데오로 우리 집에서 헬퍼로 일하는 조이 동생 제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야 기집애야 너 또 전화칩 바꿨어.

내가 수리가오로 출장 온 사이 전화기 칩이 이상해 새 것으로 교환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내 전화에 발신인 이름이 뜨지 않았던 겁니다.

 

-이 기집애가 아침부터 사람 놀래켜.

아닌게 아니라 지금껏 필리핀에 살면서 바바애(여자) 손목 한 번 잡아 본 일 없거늘,

아침 문자는 꼭 나와 살붙여 살던 여자가 떠나면서 보낸 것 같은 뉘앙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휴 놀래라. 근디 마할끼따는 또 뭔소리냐.

하고 묻자 제인이 대답합니다.

 

-보스가 좋아하는 말 아니냐고 말입니다.

하긴 막내딸 같은 우리집 헬퍼들인지라 아침에 얼굴 불 때마다

굿모닝 대신 마할끼따라고 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러니까 제인도 나를 따라 그렇게 인사를 한 셈입니다.

 

아직 스무살도 안 된 제인인지라 하고 싶은 일도 많을 겁니다.

헬퍼 생활 청산하고 공부를 더 하겠다고 떠난다는 그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좋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치 못하는

이 나라 시스템에 은근히 불만이 쌓입니다.

 

그래도 한 1년 가까이 같이 지냈다고 잊지 않고 문자를 보낸 제인.

그 앞날에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그가 나에게 GOD bless you 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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