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

3년 쓸 땔감 & 10년 넘게 쓰는 땔감

by 고향사람 2012. 11. 29.

한 달 가까이 한국에 머물다 필리핀에 들어 왔습니다.

추운 겨울을 앞두고 팔순 노모를 모시고 오기 위해 고향에 갔다가

엄니가 이번에는 한국에 머물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이것저것 겨울 날 차비를 해 드리다 보니 한 달 가까이 머물게 된 겁니다.

 

추수가 끝난 시골인지라 할 일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이미 농사처도 다 남에게 맡긴터라 내 손길이 필요치도 않았습니다.

다만 텃밭에 심어 놓은 배추와 무가 있어 이걸 뽑아다 김장을 담그는 일만

손을 보탰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마침 뒷동산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보니

마침 간벌 해 놓은 나무토막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땔감으로 손색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내 고향집은 온돌이어서 겨울에는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열심히 지게질을 했습니다.

운동 삼아 여러 날에 걸쳐 나무를 져 날랐더니 제법 많은 양의 땔감이 쌓였습니다.

 

어느 날은 경운기로도 실어 날랐습니다.

그렇게 옮겨 온 땔감이 3년 겨울은 너끈히 땔 만큼이 됐습니다.

그러면서 집안을 둘러 보니

창고는 물론 추녀 밑에도 묵은 나무가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10년 전 돌아 가신 아버님이 해 놓은 땔감이 아직도 산 처럼 쌓여 있었던 겁니다.

 

내가 옮겨 놓은 나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잘 손질된 장작들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 흔적이 집 안 곳곳에 남아 있지만

땔감 까지도 아직 남아 있다는 게 그저 놀라 울 뿐입니다.

 

내 나이 쉰을 넘긴지도 한 참인데-

아직도 아버님의 그늘에서 벗어 나려면 멀었나 봅니다.

엄니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에 가기 싫어 하는 그 이유-

아마도 남편과 살던 고향집을 떼 놓기가 싫어서 일겁니다.

 

산에서 땔감을 지게질 해 오면서 나도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집안 단도리 잘 해 놓고 혼자서 필리핀에 들어 왔습니다.

엄니 마음을 좀 알겠기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