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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내 아우는 까까중

by 고향사람 2012. 9. 30.

까까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중 처럼 빡빡 깎은 머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내 아우가 까까중이 될 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며칠 전 일입니다.

오전에 볼일 차 나갔던 막내 아우가 점심 때 지나 사무실에 들어 왔는데

글쎄 머리카락이 한 올도 붙어 있지 않은 모습으로 들어 온 겁니다.

‘박박’을 넘어 ‘빡빡’인 민 대머리로 모습으로 들어 왔으니-

모두가 놀랄 만 했습니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에 가까운 아우가 머리를 빡빡 밀고 왔으니

이건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실 직원들도 아우 모습을 보고는 박장대소하고

원래 대머리여서 머리카락이 없던 현장 직원은 새 동료가 생긴양으로

자기 머리통을 치면서 좋아 하기도 합니다.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 온 아우에게

‘나이 값’ 좀 하고 살라며 나무라자 아우가 무겁게 입을 뗍니다.

-형 마음 좀 잡고 일 할려구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뭔지 모르게 가슴이 찡해 왔습니다.

요 며칠 아우가 은근히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던 게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랬거늘 어찌 그리 경솔하게 행동하누.

 

이 날 이 후 아우는 아무렇지 않게 외부일도 보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젯 밤 한국에 나가게 됐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로 급히 나가게 된 겁니다.

그런데 머리 박박 민 것이 영 부담이 됐나 봅니다.

-형 모자 좀 빌려 줘유.

이 말이 나올 정도 였으니까 말입니다.

 

추석을 앞두고 한국에 나가 찾아 갈 곳도 많을텐데-

특히 고향집 엄니는 머리카락을 다 민 막내 아들을 보면 얼마나 놀라실까-

제수씨는 또 어떻고-

 

암튼 아우 못지 않게 내 마음도 착잡했습니다.

살다보면 인생 뒤안길을 다 지워 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실수 투성이고 후회 막급한 일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흔적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흔적을 거울 삼아 앞 길을 영화스럽게 꾸미는 게 더 소중합니다.

 

머리카락을 박박 민다고 머릿속 잡념이 다 사라진다면

나도 매일 머리카락을 밀어 버리고 싶습니다.

이제 아우가 돌아오면 머리카락을 미는 대신 마음을 닦는 연습을 하자고

이를 겁니다. 흔들림 없는 불혹의 나이를 생각하라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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