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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구두는 C급, 그 주인은 D급’

by 고향사람 2012. 9. 27.

홍콩에서 사는 아우 친구가 필리핀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하던 일을 접고 새 사업을 구상중인 이 친구를 위해

아우가 초청해서 이뤄진 일입니다.

 

중국과 홍콩,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젊은이라 선지

복장이며 구두, 배낭까지 아주 편한 스타일이었습니다.

성격도 서글서글 해 처음 보는 나 한테 형님 형님하면서 따르는 게

붙임성도 좋아 우리와 금세 친해졌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에 온 첫날 환영 차원서 함께 마사지를 받으러 갔습니다.

마침 새로 개업한 곳이 있어 시설도 깨끗하고 종업원들도 친철해

그 곳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아우 친구 역시 만족해 했습니다.

이튿날은 사무실에 함께 출근해 우리 일하는 현장을 둘러보고

점심은 로컬 식당에 가서 필리핀 음식을 먹으며 우의를 다졌습니다.

 

그런데 이 아우 친구가 아침 출근 때부터 줄곧 내 신발을 신고 있는 겁니다.

구두가 불편해 그런가 보다 하면서 다른 신발도 많으니

편리한 것으로 신으라 일렀습니다.

 

그런데 아우 친구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자기 구두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그 많은 신발중에 하필이면 아우 친구 구두만 없어진 겁니다.

그것도 새것도 아닌 허스름한 중국산 C급 구두인데 말입니다.

 

말도 안돼는 사건?인지라 이곳저곳 찾아 보라 했더니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 신발을 빌려 신을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 이튿날 사무실에 있겠지 싶어 찾아 보았는데도 역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막내 아우가 한국에 나갈 일이 있어 공항으로 차를 태워주러 나가는데

아우 친구가 그럽니다. 혹시 배낭 속에 자기 구두 숨겨 가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그만큼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혹여 도둑이 들었다면 크록스나 나이키 등 유명 메이커 신발을 가져가야 맞지

중고 가게서도 거들떠 보지 않을 중국산 C급 헌 구두만 달랑 들고 갈 턱이 없어섭니다.

개가 물어 갔다면 이해는 가지만 그것도 아우 친구 것만 두 짝을 다 물어 간다는 것은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별일 이 다 있다 싶어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공항에 가 있던 아우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신발을 찾았다는 겁니다. 정말 아우 배낭에 그 신발이 들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평소 친분이 있는 한국인이 우리가 갔던 마사지 샾에 갔는데

거기서 한국 사람이 구두를 바꿔 신지 않고 자기네 슬리퍼를 신고 갔다며

혹시 아느냐고 물어 마침 이곳을 잘 이용하는 막내 아우한테 전화로 확인을 해 온 겁니다.

 

전화를 해 주던 막내 아우 하는 말

‘자기 구두는 C급이라더니 정신 빼 놓고 사는 주인은 D급’이라며 놀려 댑니다.

이 전화를 받고 마사지 샾으로 달려간 아우 친구.

그냥 나올 수 없어 마사지 한 번 더 받고 왔다며 너털웃음입니다.

 

그 속없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중얼 거렸습니다.

-그려 그러고 보니 니는 정말 D급 맞네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