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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매달 쌀 180만원어치씩 기부한 얼굴없는 천사

by 고향사람 2012. 8. 8.

불가에서는 탐진치 삼독을 경계하라고 가르칩니다.

탐진치(貪瞋痴)는 욕심(貪)과 성냄(瞋) 어리석음(痴)을 버리라는 겁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삼독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이 인지상정 일수도 있습니다.

 

기독교 역시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현실은 원수를 만들어 가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이런 세상살이 속 오늘 아침 한 조간 신문에서는 인터넷 톱 기사로

정말 탐진치의 속세를 떠나 진정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멋진 사나이 기사를 올려 감동을 주었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주제에 너무 잘 어울려 그대로 퍼 담았습니다.

이 감동이 모든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종소리가 됐으면 합니다. 

 

[양주의 얼굴없는 50대 천사]
매달 180만원어치 - 기부쌀 5년간 합하면
20㎏짜리 2000여 포대… 금액으로는 8000만원 달해
가장 좋은 쌀 기부해야 - 쌀가게 주인이 싼것 권하자
"부모님 드린다고 생각하라 사람들이 맛있게 밥 먹어야"
'얼굴 밝히자' 권유에 - "내 조그만 기쁨 뺏지 말라
사람들이 알게되면 슬플 것… 얼굴 알려지면 거래 끊겠소"

"사장님, 저와 약속 하나 해주셔야겠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사장님 가게에서 쌀을 사갈 텐데, 앞으로 제가 누군지,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저에 대한 어떤 것도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지난 2007년 한모(62)씨가 운영하는 경기도 양주시의 쌀가게에 50대 남성이 느닷없이 찾아와 한 말이다. 한씨는 "처음에는 '이 사람 이상한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상한 사람' A씨는 지금 한씨 가게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귀빈 고객이 됐다. 지난 5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달 180여 만원어치 쌀을 현금으로 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A씨가 구입한 쌀은 자신이 먹기 위한 쌀이 아니다. 그가 주문한 쌀은 도움이 절실한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정, 독거노인들을 위해 양주 시내의 복지관, 노인정, 교회 등 10여 곳에 '익명의 기부자' 이름으로 배달됐다. 지금껏 누가 보냈는지도 알 수 없는 쌀은 20㎏짜리 2000여 포대로 무게만도 40여t에 달한다. 한씨는 "그분이 지금까지 남을 돕기 위해 주문한 쌀이 8000만원어치에 이른다"고 말했다.

7일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1리 경로당에서 독지가(篤志家) A씨가 보낸 쌀을 전달받은 노인들이 활짝 웃고 있다.‘ 얼굴 없는 기부 천사’A씨는 지난 5년간 매달 양주시 일대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나 독거노인 등이 배를 곯지 않도록 읍사무소, 교회 등에 익명으로 40여)의 쌀을 보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지난달 30일 양주시 백석읍사무소는 A씨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쌀가게 주인 한씨를 채근했다. A씨가 읍사무소로 전화를 걸어 "1시간 후 20㎏짜리 쌀 40포대가 배달되니 어려운 이웃에게 써달라"는 말을 한 뒤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쌀가게 주인 한씨가 쌀을 실은 트럭을 타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씨는 "그분과의 약속 때문에 누구인지 말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읍사무소 관계자는 "작년부터 우리 읍사무소로만 5.4t에 달하는 쌀 270포대를 보낸 '얼굴 없는 기부 천사'의 정체를 도통 알 수가 없다"며 "1500만원어치의 쌀을 기부한 사람이 분명히 읍 출신의 자산가일 것이란 추정만 할 뿐"이라고 했다. 주민들도 기부 천사의 이야기가 회자되며 읍사무소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크게 성공한 지역 출신 인사가 좋은 일을 한다"고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기부자의 얼굴을 유일하게 본 쌀가게 주인 한씨의 말은 달랐다. 한씨는 "매달 흰 봉투에 현금 180만원을 넣어 찾아오는데, 그분은 한눈에 봐도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이 남성을 처음 봤을 때의 모습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키는 한 165㎝쯤 될 거예요.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하고, 트레이닝 바지에 때가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어요."

기부 천사는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지난해 여름 한씨에게 "쌀을 집으로 배달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한씨는 "그분의 집에 가보곤 깜짝 놀랐다"고 했다. 기부 천사가 사는 집의 모습이 한씨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한씨는 "대여섯 평밖에 되지 않는 허름한 가게인데 안쪽의 두 평 정도 되는 쪽방에서 아내와 살고 있더라고요. 내외가 아주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거기서 한 달에 200만원 가까운 쌀을 기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 나이가 55세인데, 집도 세들어 사는 거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쌀가게 주인 한씨는 "그분은 다른 사람들처럼 생색내기 위해 기부를 한 게 절대 아니다"며 "처음 나를 찾아와서 '쌀을 사서 기부하고 싶은데 어떤 쌀이 좋겠습니까?'라고 묻기에 '기부용 쌀이면 보통 2~3년쯤 지난 중하급(中下級) 쌀을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더라"고 전했다. 한씨가 20㎏짜리 한 포대당 2만~3만원대 초반의 제품을 권했더니 기부 천사가 "가격이 싼 쌀은 안 돼요. 제일 비싼 걸로 주십시오. 부모님께 드린다고 생각하고 가장 좋은 쌀을 주셔야 합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쌀가게 주인 한씨는 한 포대에 4만6000원에 팔리는 쌀을 권했다고 한다. 한씨는 "가깝게 지내려고 '커피 한잔 하고 가시라'고 다가갈라치면 그분은 냉랭하게 '바쁩니다'라는 말만 하고 사라졌다"고 했다.

한씨는 "그분은 쌀 기부 말고도 분명 좋은 일을 많이 할 것"이라고 했다. 한씨가 그러한 짐작을 하는 이유는 기부 천사가 늘 타고 다니는 승합차 안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씨는 "그분이 모는 차 안에 어린이용 옷가지와 신발, 라면박스가 가득 실려 있었다"며 "고아원이나 사회복지시설에 봉사를 다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본지는 한씨를 통해 기부 천사 A씨를 만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본지 부탁을 받고 쌀가게 주인 한씨가 A씨에게 "좋은 일 하는 분이니 언론에 나오면 좋을 것 같아 전화를 드렸어요"라고 했더니 A씨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내 인생에서 조그만 기쁨을 빼앗기기 싫습니다. 사람들이 제가 하는 일을 알고 그러면 저는 큰 슬픔에 빠질 거예요. 제가 누군지 알려지게 되면 사장님 가게와의 거래도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