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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이야기

고급주택보다 화려한 중국인 묘지

by 고향사람 2012. 5. 12.

 

- 이 건물이 무덤이라고 하면 믿을 수 있으려나. 중국인들의 무덤은 이렇게 크고 화려하다.

 

- 반면 가난한 자들의 무덤은 봉분은 커녕 담벽에 유해를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죽어서도 빈부격차는 여전한 셈이다.

 

 

 

 

삶이 고난한 자들이

점찍어 둔 내세가 극락은 아닐터

빈(貧)하고 천(賤)한 인생 경험은

욕심까지도 소박해 진다는 사실은

겪어 본 자들만의 이심전심(以心傳心)

 

부콧잎 이엉으로 지붕 올리고

쪼갠 대나무 엉기성기 엮어 벽 세워 놓은

피노이들의 초막(草幕) 즐비한데

죽은 자들의 화려한 유희(遊戱)가 산자들을 희롱한다

생전의 집 보다 더 화려한 망자(亡者)의 유택이

삶의 질곡을 더 느끼게 하는 곳이

바로 차이나 세메터리(묘지)이다

 

메트로 마닐라 북쪽 아바드 산토스역 부근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인 공동묘지는

죽은 자의 유언과 산자의 허세가 어우러져

날마다 살풀이 춤 판이 거나하다

재운(財運)이 미치지 못한 이 나라에서

금권으로 치부하고 있는 중국인들은 망자가 돼서도

이 땅을 영원히 차지하겠다고 산토스 지역에

또 다른 극락(極樂)을 꾸며 놓은 게 바로 그들만의 공동묘지다

 

화강암 기둥에-

부드러운 젖빛 대리석 바닥은 물론 오석(烏石-검은돌)으로 만든 관,

그리고 잡귀도 근접치 못하게 만들어 놓은 황금 빛 사자상이

산 자들까지도 압도한다

 

이뿐이랴

황실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초상화가

박물관을 연상케 하고

묘실의 에어컨은 그 용도를 가늠키 힘들게 한다

누구를 위한 시설인고-하면서 말이다

 

아파트 건물처럼 번호를 붙인 건물이

각 구획마다 늘어서 있고

그 불럭마다 초현대식으로 치장한 유택들은

전기 수도는 물론 숙식까지 가능한 주방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

이를 일러 어찌 무덤이라 부르랴

 

죽은 이를 위령(慰靈)하러 왔다가

꺼지지 않는 촛불에

시들지 않는 꽃송이를 보며

산자들끼리 위로를 주고 받아야 할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이 또한 여기라

 

중국 전통 가옥에 때론 교회와 성당 모습

심지어는 오페라 극장과 승전 탑을 연상케 하는

각양각색의 유택을 둘러 보노라면 삼의 비애만 커진다

하물며 집 없는 피노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묘지를 보고도 묘지라 말할 수 없는

산자들의 망연자실과

죽은 자들의 끝없는 유희

 

-공덕당이라는 한문 글씨가 이채롭다. 이곳 역시 무덤이다. 이 안에는 가족들의 유해를 공동으로 봉안해 놓고 있다.

 

 

몇 기가 봉안돼 있는지도 알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드는 피노이 잡부(雜夫)나

한 시간 가이드에 수백 페소를 요구하며 따라 붙는

자칭 가이드의 표정이 밉상스러운 것은

영생을 꿈꾸며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심술 때문이리라

 

유택 한 기당 피노이 열 명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죽은 중국인이 산 피노이를 더 비참케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한 유택의 신세를 지면서도

고인에게 한 치의 미안함도 들지 않는 것은

사후의 차별이 더 야속하기 때문이다

 

굵고 짧게 살다

흔적없이 사라지리라는

격언이 공염불이 된지 오래고

가진 자는 죽어서도 저택에 남는 것이 현실이 되는 마당에

돈 없음이 죄라는 무거운 말이 떠 오른다

필리핀에 있는 중국인 묘지에 가 보면

감회가 새로워진다.

 

산다는 것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