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뭔가를 말할 듯 말 듯 하던 ‘보츠’가
오늘은 작심한 표정으로 다가와 입을 엽니다.
그런데 첫 마디가 I'm sorry입니다.
그러더니 한다는 소리가 cc tv를 지켜봐서 아시겠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매일 회개의 기도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흉내까지 냅니다.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자꾸 cc tv 이야기가 나오는 게 눈치를 챌 수 있었습니다.
-아우와 함께 사는 집안 책상에는 작은 도자기 하나가 있습니다.
빨랫감을 내 놓을 때 마다 주머니에서 쏟아져 나오는 동전과
잔돈을 그 속에 넣어 두곤 했는데-
그 돈을 한 직원이 빼간다는 신고?가 들어 온 게 얼마 전 일이었습니다.
다 없어져도 아우나 나 모두가 신경도 안 쓸 돈이지만
직원의 신고가 들어 온 이상,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기 전에 일침을 놓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신고가 들어 왔다는 말은 꺼낼 수 없어 cc 카메라를 설치해 놨는데
네가 돈을 가져가는 모습이 다 찍혔다고 동생이 엄포를 놨었다는 겁니다.
확실한 증거를 들이 밀지도 않았는데 제 풀에 잘못을 인정하고
동생한테 백배사죄 한 것은 물론 다른 직원들에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나 봅니다.
내가 아들놈이 다쳐 마닐라에 있을 때 일인가 봅니다.
그 후 내가 현장에 복귀하자 이 친구 나 한테까지 사죄를 해 온 겁니다.
그래서 첫 마디가 ‘cc tv를 봐서 아시겠지만-’으로 시작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마터면 뭔 cc tv하고 반문할 뻔 했었지만 나 역시 눈치가 9단이라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타이른 뒤 등을 두드려 주고 손까지 잡아 줬습니다.
매일 회개하는 기도를 한다는데 더 이상 무슨 소리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나저나 있지도 않은 시시 카메라와 시시 티브 소리를 해댄 아우와
그게 진짜 있는 체 맞장을 친 나도 오늘부터 회개 기도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아무튼 시시 카메라 무서운 건 필리피노들도 잘 알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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