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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이야기

‘킬'(Kill) 할 뻔 한 '마킬링' 산의 추억

by 고향사람 2008. 4. 16.
 

‘킬'(Kill) 할 뻔 한 '마킬링' 산의 추억



라구나주 깔람바에 속해있는 판솔(Pansol)은 근처에 라구나 호수와 마킬링산이 있고,

온천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지역이라 주말이면 늘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답니다.


특히 하루에도 몇 번씩 구름모자를 �다 벗었다 할 만큼 높고 큰

마킬링산은 모든 이들의 선망대상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눈만 뜨면 보게 되는 산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멀리서 처다만 보는 그런 산으로만 인식돼 왔던 터입니다.


산이 높고 큰 것도 그렇지만, 밀림으로 우거진 곳이라 선뜻 산을 오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산을 이 '부싯돌'이 도전했다는 거 아닙니까.

점심으로 찐 감자와 누릉지, 빵을 준비하고 간식거리로는 망고와 당근, 사이다 그리고

비상식량으로 쵸컬릿 과자 사탕까지 준비해서 멋지게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한시간 가량 올랐을까요.

화전민 촌이 보이고 좀 더 올라가자 바나나 농장까진 그런대로 길이 나 있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거짓말 같이 길이 사라져 버린 겁니다.

밀림 속을 헤매고 헤매다가 겨우 사람 몇이 다녔음직한 흔적을 발견하곤 너무 반가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길이 없어지고-.

정말 귀신한테 홀린 줄 알았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골짜기를 몇 개 건너고 능선도 넘고 하다가는 정말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등산을 하다 보면 산아래 마을이 보이거나,

능선이 눈에 들어오면 그 것으로 방향을 잡는 게 보통인데,

이건 완전히 밀림에 둘러 쌓여 하늘만 빼꼼히 보이니

올라가는 건지 내려가는 것인지 조차 구분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등산로도 없는 곳에서 더 이상 헤매다가는 큰일을 당할 것 같아 하산키로 하고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길 아닌 길이 한도 끝도 없는 겁니다.

더군다나 중간 중간서 만난 폭포는 90도 경사에 높이만도 20미터는 족히 되는 그런 곳을 두 곳이나 지나고 6-7미터급을 하나 더 지나고 나자 이건 완전히 탈진상태에 이를 정도가 됐었습니다.


이미 팔다리는 긁히고 찔린 자국으로 엉망이었고, 방향 감각마져 상실돼 해떨어지기 전에 하산 할 수 있다는 기대조차 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 와중에서도 동행자는 나중에 누가 우리말을 믿겠느냐며

증거(?)로 사진을 찍어 두어야 한다며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댑니다.

덕분에 잠시 웃었지만 속으로는 둘 다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릅니다.


정말 마킬링산서 "킬링"되는 줄 알았으니까요.

마킬링산속서 다섯시간 가량을 헤매다가 마지막으로 만난 난관이 바로 수직 20미터 남짓한 폭포였습니다. 위에서 아래를 쳐다보니 다리가 떨려 도무지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수직 폭포 양쪽이 깍아지른 절벽이라 돌아서도 갈수가 없다는 겁니다.

분명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었으니 내려가는 길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동행인과 함께 탈출구를 찾는데 한쪽에 작은 밧줄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옛 동화에 호랑이에게 �기던 자매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를 하자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 왔다는 이야기가 언뜻 생각이 나는 겁니다.

그처럼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선 밧줄의 안전부터 확인한 다음 조심스럽게 낭떨어지를 내려오는데, 둘이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아래는 보지마. 그냥 위만 쳐다보면서 내려가 아래 보다가 떨어진다. 조심해-"


땀이 비오듯 떨어지고, 입술을 바짝바짝 타들어 갔지만 아래를 쳐다보지 말라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아래를 쳐다볼 만큼 여유롭지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간신히 내려와서 위를 쳐다보니 정말 살이 떨릴 정도 였습니다.


한국 땅 같았으면 장비라도 제대로 챙겨 올수 있어서 이런 낭떨어지는 문제도 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우리들은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이었기에 더욱 힘이 들었던 것입니다.


폭포 밑에서 발견된 과자 봉투를 보면서 우리는 안심을 했습니다.

하산길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 20여분 골짜기를 더 타고 내려 오자 앞이 탁트이는가 싶더니

햇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필리핀에서 가장 질리는 것 중 하나가 뜨거운 햇빛인데, 이날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밀림을 빠져 나왔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그 뜨거운 햇살 마져도 반가웠던 것입니다.

그렇게 얼마를 더 내려오다가 필리핀 노부부를 만났는데 다짜고짜 우리보고 코리언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자 "매니매니 코리언"이라고 하는 겁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근처에 코리아 인들이 많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내려와 보니 정말 한국인이 운영하는 리조트가 있었습니다.

마킬링산 지금도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는 산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반드시 다시 정복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