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여행이야기

수락산 미친 눈사람이 우리 였당께-

by 고향사람 2007. 2. 24.
대한(大寒)이 놀러 왔다 얼어 죽었다는 소한(小寒)인 6일.
한 겨울 추위도 우습게 여기던 산방 벗들이 수락산역에 모였답니다.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긴 겨울 밤,
카페에 눈팅하러 들어갔던 이들이
즉석서 산행을 결정해 이날 오전 모이게 된 것입니다.

밤 샘 한 사람들 덕분에
영문도 모르고 아침에 연락받고 뛰어 나온 이들 중엔
청바지에 사파리 잠바차림도 있었답니다.
배낭도 없이 나온 그-. 투명 배낭이라고 우기기까지 하는 바람에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눈만 오면 미친다는 이들, 바로 총쏘는산타와 바이올렛 그리고 여진.
부싯돌이었답니다. 여기에다 명단에 없던 토마토까지 만나 번개치고는
인원수 괜찮다 했는데 토마토는 다른 일행과의 산행이 계획돼 있어
네 사람이 미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매번 헛다리만 집던 기상 캐스터의 날씨 예보가 오늘 따라서는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 폭설이 내려 온 천지가 금새 눈꽃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덕분에 산길 곳곳에는 ‘나 잡아 봐라’며 주책 떠는 이들 땜시
우린 미리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눈 오는 날 주책은 시아버지도 몰라 본다고
바이올렛과 여진은 발자국 없는 눈만 보면 엉덩이 깔고 포즈를 잡습니다.
이 때마다 산타는 배낭에서 디카 뽑아 총쏘는 흉내를 냅니다.
그래서 총쏘는 산타가 됐는지도 모릅니다만,
주책없기는 다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래도 점쟎기는 부싯돌님이 최고 였습니다.(주최측 농간 ㅋㅋㅋ)

수락중고등학교가 있는 사거리를 시점으로 덕성여대생활관 시립양로원을 거쳐
깔딱고개를 피해 절터 옹달샘 쪽으로 올랐습니다.
깔딱고개쪽을 택하지 않고 반야봉쪽을 바라보며 오른 것은 워낙 많은 눈이 내려
받줄잡고 올라가는 능선길을 피하고자 함 때문이었습니다.

이날 주 능선에 이르자 눈과 바람이 얼마나 심한지 꼭 히말라야 정상에 선
그런 추위와 불안감이 온 몸을 움츠리게 했습니다.
거기다가 처음에는 수락산 정도는 산책 코스로 여기는 듯 하던 여진이
‘산이 갑자기 높아 진 것 같다’며 투덜거려 산타한테 물어 봤습니다.
그러자 산타 하는 말, 산도 한 살 더 먹었으니 키도 컸쟎았을까요-
같이 미쳐가는 마당에 뉘 탓할까만요.
그래도 진도는 나가야지 그냥 하산하면 ‘애써 잡아 놓은 여자 옷 벗기다 만 꼴’이
아닙니까. 덕분에 치마바위와 남근바위를 거쳐 정상까지 탈환했습니다.
눈보라 속에 선채로 지지미(부침개) 나눠 먹고 커피 한 잔으로 몸 덥힌 다음
석림사를 거쳐 장암동으로 하산했습니다.

밤새 잠 안자고 채팅에 빠진 인간들 덕분에 마련된 다섯시간 반짜리 수락산 등정.
내 생전 그렇게 오랜 시간 수락산에 머물러 보긴 처음이었습니다.
눈 꽃에 취하고,
산우들까지 다 눈사람이 돼 버렸던 이날의 추억을 어찌 잊으리오만,
뒤풀이 또한 웬수된 이들끼리 빠지지 않고 했답니다.

마지막 타임에 천사까지 합세. 한방오리탕으로 거나하게 먹었는데,
주인 아줌마 오리다리를 네 개로 만들어 내는 놀라운 재주까지 선보여
이날은 미친오리까지 합세한 꼴이 돼 버렸습니다.

어 추워-
하지만 마음만은 따슴했던 산행이라 우리끼리만 비밀로 하려 했는데
나 또한 미쳤나 봅니다. 이걸 글이라고 쓰고 있는 게 -
그날 네 사람 나중에 정신병원서 봅시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