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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부채선물'합니다

by 고향사람 2007. 6. 19.

천원에  두 개.
그것도 천에다 그림까지 곁들여 ‘황진이’가 들고 다녀도 손색없을 만큼한 것이
5백원에 불과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원에 한 개씩인 것 같았는데
지금은 두 개씩 파는 것이 대세가 돼 버렸나 봅니다.
전철안에서 파는 중국산 부채 이야기입니다.

가격이 너무 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천원을 주고 두 개를 샀습니다.
펼쳐보니 제대로 된 부채였습니다. 부챗살도 단단했고 가공도 훌륭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상품이 어떻게 5백원밖에 안할까.
그야말로 껌 값에 지나지 않은 부채를 들고 다니며 요즘 긴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아무리 에어컨 시설이 잘 됐다 해도 밖으로만 나오면 금세
햇빛과 푹푹찌는 더위를 피할 수 없는데 이 때 부채를 꺼내 해가림도 하고
간간히 부쳐 주면 내 몸이 호강을 하는 것입니다.
5백원짜리 부채로 말입니다.

그런데 부채를 사용하다 보니 그 씀씀이가 다양한데 놀라게 됩니다.
우선 부채는 햇빛을 가리고 바람을 내 시원하게 하는 기본 용도 외에
의례용이나 장식용으로도 많이 쓰이는 것을 볼 수가 있으며,
운동회나 오락 때 지휘봉의 구실도 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판소리나 창을 할 때는 긴장감과 흥을 고조시키는 시각적인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부채의 바람은 재앙과 병을 몰고 오는 부정한 것들을 쫓는다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도 부채의 바람은 악마를 쫓는다고 합니다.
지금도 굿을 할 때 복을 불러들이고 잡귀나 재앙을 멀리 쫓아내는 도구로서
부채가 사용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랍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불을 지필 때 바람을 만드는 게 부채였고
외출 시 길에서 꼴보기 싫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얼른 얼굴을 가리는데도 부채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부채가 내 노라는 사람들의 소지품 1호가 되기도 했습니다.

음력으로 5월5일인 오늘은 1년중 양기가 가장 많다는 ‘단오’입니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수리취를 넣어 만든 둥근 절편을 만들어 먹은 뒤
아낙들은 그네를 뛰고 남정네들은 씨름으로 힘 겨루기를 하면서 하루를 즐기는 날입니다.
지금이야 단오가 뭔 날인지도 모르고 넘기는 이들이 더 많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단오날의 하이라이트는 부채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단오부채(端午扇)라고 하는데 과거 조선시대만 해도 공조(工曹)에서
단오부채를 만들어 진상하면 임금은 그것을 각궁의 신하들과 시종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덕분인지 몰라도 부채는 반상은 물론 임금님도 좋아 하기는 마찬가지 였나 봅니다.

조선 태종 임금이 남긴 부채에 관한 시를 보면 이를 짐작해 볼 수가 있습니다.  
‘바람 쐬는 평상에 앉아 밝은 달을 생각하며
달빛 비치는 집에서 시를 읊을 때 맑은 바람을 생각하도다.
대 깎고 종이 붙여 방구 부채 만든 뒤에는
밝은 달 맑은 바람이 이 손 안에 있도다’

우리 속담에도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단오를 맞아 우린 부채 선물도 좋지만
올 여름 더위 먹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라는 의미에서 덕담 한 마디씩 나누면 어떨까요
부채 바람보다 더 시원한 것으로 골라서 말입니다.

참-
오백원짜리 부채 한 개 남았는데
꼭 필요한 분 있으면 연락하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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