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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스키장에서 생긴 일 (2)

by 고향사람 2007. 2. 21.
누가 그랬던 가요. 경험만한 스승은 없다고-
슬로프를 서너번 내려가 보니 이젠 어느 정도 자신이 붙어
스키타는 맛을 좀 알 것 같았는데,
이 때 일행들이 모두 중급 코스로 이동을 하는 겁니다.
이날 이 코스 마감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마지막 리프트를 타야기에 무조건 함께 가야 한다며 말입니다.
공생공사(共生共死)라는 말도 이날 처음 들어 본 것 같습니다.

중급 코스 꼭대기에 서 보니 이건 아예 벼랑이었습니다.
자살 연습하러 온 것도 아닌데, 낭떨어지 위에 세워 놓고 스키타고 내려가라니-
뒤를 돌아다보니 필리핀 친구 폴이 덜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죽어도 못 간다는 표정과 함께 말입니다.

이날 밤 마지막 리프트를 타고 올라 왔던 우리 일행인지라
이미 타고 내려갈 기구도 없고 어차피 혼자가야 할 길이기에
천천히 스타트를 했습니다.
내 마음은 자동차 1단 속도로 내려가고 싶은데
이건 출발만 했다하면 자동으로 미끄러져 급가속이 돼
체감 속도는 100킬로가 넘는 것 같아 집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유언이라도 자세히 적어 놓고 오는 건데
라는 후회도 있었지만 우선은 살아서 내려가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그런데 앞서 갔던 다른 팀원중 한 사람이 보드를 타다 손목이 부러져
안전요원이 들것에 태워 끌고 내려가는 게 보였습니다.

순간 나도 저만한 부상만 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상은 물론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섭니다.

나 죽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멀리 필리핀서 이곳까지 왔다가
스키타다 죽었다는 소린 듣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려가는 안전요원을 불러 사정했습니다
필리핀 친구 좀 잘 내려가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무선 연락을 하는 것 같더니 잠시 뒤 패트롤 카(스노우 모빌)가
굉음을 내며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필 친구 폴은 그렇게 내려갔고 이젠 내가 맨 꼴지가 돼 버렸습니다

한 숨만 푹푹 쉬고 있는데 이건 기도 제목에도 없던 일이 벌어 졌습니다
필 친구를 태우고 갔던 패트롤 카가 다시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운전사가 다가오더니 필 친구가 나를 꼭 태워 내려와 달라고 신신 당부했다는 겁니다

이날 패트롤 카를 타고 맨 마지막으로 스키장을 빠져 나오자
밑에 있던 이들이 박수를 치면서 난리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팀 사람들은 창피해 죽겠다면서 아는 체도 않합니다.
이날 부상당한 사람 빼고 멀쩡한 사람이 패트롤 카 타고 내려온 이들은
우리 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어쨌든 한 번 타보고 싶었던 스키도 탓거니와
덤으로 패트롤 카 까지 타는 행운도 얻어 폴과 나는 신이 났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밤 12시 반.
젊은 멤버들은 이날 밤 꼬박새우며 동양화 맞추기에 심취해 버렸고
밤새 넘어지고 뒹굴었던 나와 폴은 금새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이튿날
일어나려니 온 몸이 쑤시고 저려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이 뜨거운 물에 푹 담갔다 나오니 그나마 살 것 같았습니다.
일행은 다시 스키를 타러 나가고
난 주변을 둘러보면서 살아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이 난 사람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대만에서 단체로 온 관광객들은 눈도 처음 봤거니와
썰매도 처음 타는지라 그들이 있는 곳은 정말 난장판에 가까웠습니다
이들은 인도하는 한국 사람들의 가슴에 찬
공작요원이라는 표시는 또 얼마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지-
암튼 이번 스키장에서 있었던 일은 평생 기억될 추억거리였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는 가 봅니다.

스키 처음 타는 나처럼 신앙생활을 막 시작한 이들의 고충도 적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들을 잘 인도해 스스로 일어 설 때까지 도와 주는 것은 바로 우리들 몫입니다.
스키타는 일이나 신앙생활은 똑 같이 잘 넘어 질 수 있는 특징이 있다는 거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