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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노모 &50대 아들 이야기

대문 걸어 잠고 먹는 '아욱국'

by 고향사람 2006. 11. 3.

한참 만에 고향집에 오니 가을 분위기가 물씬 합니다.
뜨락에는 빨간 고추, 마당에는 누런 콩깍지가 가을 햇볕에 속내를 드러내고 있고,
뒷곁 장독대 옆에 서 있는 감나무는 '아기 볼' 만큼이나 고운 홍시를 매달고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반면 텃밭에는 김장용 배추와 무우가 시간이 갈수록 푸르름을 더해
유일하게 반(反)가을을 외치는 이방인 같아 보입니다.

어디에다 눈길을 주어도 넉넉해지는 마음이
정말 가을을 실감하게 합니다.

시인 릴케가 가을 날 이란 시를 통해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외친
그 간절한 심정이 바로 이 같은 풍요를 염두한 기원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오색 단풍과 보름달이 아니어도 이 계절이 아름다운 것은
넉넉한 가을걷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을 또 다른 맛이 있다는거 아십니까.
텃밭 혹은 비닐 하우스에서 별다른 손길도 받지 않고 자란 아욱이
눈에 띄는 계절입니다.

이 아욱을 뜯어다 된장 풀고 파 숭숭 썰어 넣고 끓인 아욱국은
그 맛이 어찌나 구수하면서 단지 이웃이 알세라 대문 꼭꼭 걸어 잠그고
자기 식구들끼리만 먹는 국이랍니다
비싼 쇠고기 국을 끓여도 문을 잠그지 않고 먹는데 비해
아욱국은 대문까지 잠그고 먹었다고 하니 그 맛이 짐작가지 않습니까.

오늘 저녘에 그 아욱국을 먹었습니다.
큰아들 내려 온다는 전화 받고 노모가 끊여 놓은 아욱국이었습니다.
‘엄니 대문 걸어 잠겄수. 옆집 알면 않되쟎유’

들은 풍얼은 있어 농담을 했더니 어머니 대답 왈,
‘벌써 자물통까지 채워 놔 도둑놈도 못 들어오니께. 맘 놓고 어여 먹어’
ㅋㅋㅋ
덕분에 과식해서 지금까지도 속이 더부룩해 죽을 맛이랍니다.
차라리 대문이라도 열어 놓고 먹었으면 이런 일 않일어 났을 텐데-

날씨가 많이 서늘해 졌습니다.
그래서 따스한 아욱국이 더 간절해 집니다.
다음에 아욱국 끓일 땐 대문 활짝 열어 놓을테니까
한번들 오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