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뒷 집 아저씨.
이 분은 울 엄니랑 동갑입니다.
단지 생일이 한 주 정도 빨라 자칭 ‘수양오빠’라고 강조하는 분입니다.
요즘들어 검은 머리카락이 다시 나고 있다며
회춘을 자랑하시고 그 증거? 처럼 농사도 직접 지으며
동네 궂은 일도 앞장서 해결하시는 노익장이십니다.
아들이 집을 새로 지어 드리겠다고 해도 사양하고
딸내미가 비싼 잠바를 사 보내자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경로당을 찾아 오는 보따리 장수의 싼 물건과 조건없이 바꿔 입는-
정말 시골 노인네 소리 듣기 좋은 그런 아저씨입니다.
혼자 서울에 갈 때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며
천안까지 간 뒤 노인분들에겐 운임이 무료인
전철로 바꿔타는 알뜰?한 아저씨인데-
이 아저씨가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점심을 사줬다는 겁니다.
-마누라한테는 국밥 한 그릇도 제대로 사주지 않는 양반이
쌩판 모르는 여편네게는 넙죽 점심을 사줬대유. 글씨-
옆집 아주머니가 홧김에 소문을 내는 바람에
어느 날 내 귀에까지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도둑님? 제발 저리다고 했던가요.
며칠 뒤 옆집 아저씨를 만나게 됐는데
아저씨가 먼저 실토를 하는 겁니다.
-자네 내 얘기 좀 들어보게. 아 글씨 내가 천안역서 서울 가는 전철을 기다리는디.
어떤 아줌씨가 오더니 다짜고짜 밥 좀 사달라는겨. 아침도 굶었다면서.
차 시간을 보니 아직 멀었고. 혀서 그러마 하고 역 앞으로 나가 설렁탕 한 그릇 사줬네 그려. 근디 그 아줌씨 밥을 맛나게 먹더니만 근처에 자기 집이 있다며 가서 차라도 한 잔 하자는겨. 고마워서 그런다며.
이 때 갑자기 아저씬 정신이 들더라는 겁니다.
이거 내가 촌에서 올라 온 걸 어찌알고 나를 후리?려고 그러는가 싶어 지더라는 겁니다.
괜히 잘못 따라 갔다가는 돈 몇 푼 있는 거 홀라당 털리고 개망신 당하지 싶어
정중히 거절하고 얼른 역으로 갔다는 겁니다.
여기까지가 옆집 아줌마가 소문낸 이야기와 같은 내용입니다.
아저씨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그리고 그냥 말 수 없어 아저씨께 한 말씀 드렸습니다.
-아따. 그건 아저씨가 잘못허신규. 허구많은 사람중에 아저씨를 찝었는디.
그렇게 매몰차게 거절허면 어떡헌대유. 모른척 따라 들어가 한나절 놀다 나와야주.
동네 일을 잘 봐주면서 워째 그 아줌씨 부탁은 고렇게 거절허셨대유.
암소리 말구유. 시간 있을 때 그 역에 다시 가봐유. 그리구 그 아줌씨가 보이거든
이번에 암말 말고 따라가서 놀다 와유. 나이 탓 허지 말구유.
내 말에 윗집 아저씨는 큰일 날 소리라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나이가 워때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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