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석현’입니다. 울 아버님이 유명한 성명학자에게 보리쌀 서말을 주고 지은 이름입니다. 이마에 ‘가마’를 두 개나 달고 나온 장남을 위한 특별한 배려였습니다.
내 이름을 한문으로 쓰면 金錫鉉(김석현)인데 덕분에 금(金 김)자가 세 개나 들어 있습니다. 쇠(金)처럼 단단하고 금(金) 같이 부를 누리라는 염원이 담긴 이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름 값을 하느라선지 성인이 될 때까지 크게 아프거나 다친적 없이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부자가 되지 못한 건 좀 아쉽지만 말입니다.
그동안 좋은 이름을 지어 주신 아버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내 이름에 대한 자부심이 충만했었습니다. 헌데 이게 터키 입국 심사장에서 문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이름이 외국에서는 천박하게 돼 버렸으니 말입니다.
모처럼 외국 여행에 나선 자리- 터키 공항 입국 심사대에 여권을 내 밀었더니 ‘반갑습니다’라는 한국 말이 튀어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근자들어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어 나면서 이들도 귀동냥으로 배운 듯 합니다. 하지만 어색한 분위기가 이 한마디로 화해 모드로 바뀌는 듯했습니다.
헌데 좋은 분위기는 여기까지였습니다. 웃음기가 가시기도 전에 심사원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겁니다. 내 여권을 내 줄 생각도 않고 말입니다. 뭔가 잘못이 생긴것 같습니다. 순간 내 이름이지 싶어 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름이 문제랍니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입니다. 따라서 따지고 캐묻는 것이 많습니다. 특히 성에 관한 것은 더 그렀습니다. 내 이름 역시 섹스어필하다면서 통관을 보류한 셈입니다.
아버님이 보리쌀 서말을 주고 지은 이름이 섹스어필하다니- 더군다나 우리 집안은 경순왕 후손으로 양반을 자처하는데 섹스어필한 이름을 짓겠는가-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더군다나 일행은 이미 입국장을 빠져 나가 내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으니 더 그랬습니다.
내 이름이 문제가 된 것은 ‘석’자 때문이었습니다. 석자가 섹스 어필한 단어라는 겁니다. 돌 석(石)자가 섹스 어필하다면 나무목(木)자가 들어가면 ‘섹스 심벌’이 되려나-
하지만 언어체계가 다른 문화로 재해석 해보면 상황이 아리송해지긴 합니다. 영어 단어로 석(suck)은 '빨다, 핧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 해석 여하에 따라 각종 점잖치 못한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꽝이다', '짜증나', '한심해' 이런 의미로도 사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경향이 있을까 싶어 내 이름 석자는 suck이 아닌 suk으로 표기를 했는데도 불구, 이 이미그레이션 직원은 발음만으로도 내 이름에 컴플레인을 건 것입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한 참 당황했습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해 내 여권속에 타국가 입국 기록을 보여주며 다른 나라에서는 한 번도 컴플레인이 없었다고 항의하자 그제서야 묘한 웃음을 띠며 여권을 돌려 줬습니다.
보리쌀 서말 주고 지은 내 이름이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 이렇게 수모를 당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이 일을 아셨으면 그 이름이 어떤 이름인데- 하시면서 역정을 더 내셨을 것 같습니다.
이 일 후 외국에 나갈 때 마다 꺼림직한 기분이 드는데 카톨릭 국가인 필리핀 입국장에서도 문제가 돼 사무실까지 잡혀가?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섹스 어필한 이름 때문에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 참에 보리 대신 쌀 서말 더 주고 개명이라도 해야지 싶어 집니다. 작고하신 아버님 한테는 죄송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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