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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여행이야기

봉수산

by 고향사람 2014. 7. 5.

‘봉 잡았다’

이 말 처럼 흥분되게 하는 것도 드믈겁니다.

봉(鳳)이 전설의 새인 봉황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순간 흥분은 배가 될 겁니다.

 

 

 

봉황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로 기린, 거북, 용과 함께

사령(四靈) 또는 사서(四瑞)로 불리고 있습니다.

전반신은 기린을, 후반신은 사슴을, 목은 뱀을, 꼬리는 물고기를, 등은 거북을,

턱은 제비를, 부리는 닭을 닮았다고 하는데

깃털에는 공작처럼 오색 무늬가 있고 소리는 오음에 맞고 우렁차며

오동나무만 찾아 내려 앉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먹는 것도 대나무 열매와 영천(靈泉)의 물이라니 그 신령함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런 이유로 덕이 높은 천자(天子)가 나오면 지상에 나타난다는 새입니다.

이런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산이름.

그게 바로 내 고향 산인 봉수산(鳳首山)입니다.

 

 

 

후백제의 한을 떠 안고 있는 산

 

봉수산(483미터)은 비산비야(非山非野)의 형국인 서해안에서는 높은 산에 속합니다.

주변에 있는 덕산의 가야산(678미터)이나 광천 오서산(790미터) 등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예산 읍에서 가까운 금오산(233미터)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봉수산은 내 고향 광시면과 대흥면의 경계를 형성하고

홍성군 금마면과도 닿아 있습니다. 산 정상부에는 백제 시대에 쌓은

임존산성이 있는데 백제 부흥운동군의 최후 격전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둘레가 2.4㎞의 석성으로 이뤄진 임존성은 일부 구간만 복원,

당시의 성 모양을 재건해 놓았지만 나머지는 무너져내린 옛 성곽 흔적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임존성은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성문터와 성문 밑으로 개울물이 흐르게 하던 수구문,

그리고 우물터 건물터가 남아있는데-

보존이나 관리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이 곳이 백제 유민의 한과 투혼, 그리고 배신과 좌절이 겹겹이 서리고 맺힌

곳이라는 사실을 알진대 복원 흉내만 내고 만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내 고향이라 그런 느낌이 더 진해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임존성은 주류성과 함께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지이자,

백제 역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석성이었습니다.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무릎을 꿇은 660년, 흑치상지와 의자왕의 사촌 복신,

승 도침이 임존성에 백제 유민을 이끌고 모여 3년 반에 걸쳐

결사항전을 벌였던 곳이 이곳입니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도 신라 김유신 군대도

-군사가 많고 지세가 험해 이길 수 없었다(삼국사기)고 고개를 저었던 임존성입니다.

이런 철옹성 같은 임존성도 그 결말은 허무했습니다.

복신·도침·풍왕자의 대립과 유혈극, 흑치상지의 당나라 투항에 이은 역공으로

임존성이 함락(663년)됐기 때문입니다.

이 성이 함락되면서 백제 부흥운동도 종언을 고하고 맙니다.

끝이 나고 만 셈입니다.

 

 

 

슬픔 가득한 ‘묘순’이 전설도

 

아주 오랜 옛날-

지금의 대흥 땅에 ‘묘순’이라는 딸과 아들을 둔 어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어머니가 낳은 아들 딸은 모두 힘이 엄청 쎈 장사들이었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할까.

이 어머니 앞에 산신령이 나타나 청천벽력 같은 말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딸 두 장사의 힘이 너무 강하여 둘 중에 한명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며

둘 중에 한 명을 고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아들 딸에게 시합을 시켜서 이긴 자식을 살리기로 작정키로 한

어머니의 말에 따라 산신령은 한 명은 쇠 신발을 신고 천리 길을 다녀오게 하였고,

다른 한 명은 성을 쌓으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천리 길을 다녀오기로 했고 딸 묘순이는 성을 쌓기로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경합을 하고 있는 동안 어머니의 마음은 집안의 대를 이어갈

들이 이기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천리 길을 떠 난 아들은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 딸은 어느덧 성을 완성해 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마음은 점점 초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성문 위에 올릴 큰 돌만 가져다 놓으면 일이 끝나게 되는

딸을 보면서 어머니는 서둘러 팥죽을 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커다란 바위를 구해서 들고 오는 딸이 보이자

어머니는 얼른 팥죽을 권했습니다.

 

 

 

그러자 딸 묘순이는 마저 일을 하고 먹겠다며 성문쪽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딸의 치마를 잡으며 어머니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이제 돌 하나만 얹으면 끝이고 그럼 네가 이기는데 무얼 그리 서두르냐.

딸이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아직 오빠가 돌아 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묘순이는 어머니가 건네 준 팥죽을 받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이 얼마나 뜨겁던지 도무지 빨리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입으로 후- 후- 불다보니 시간이 많이 갔습니다.

 

이 때 였습니다.

마을 어귀로 돌아 서는 오빠의 모습이 보인 것이 말입니다.

결국 묘순이는 뜨거운 팥죽을 불어가면서 먹느라 마지막 돌 하나를

성문 위로 올리지 못했고 약속대로 저승으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이 날 이 후부터 비오는 날 묘순이가 성문위로 올리지 못한

바위를 두들기면서 "묘순아 묘순아 팥죽이 웬수지?"하고 부르면,

바위에서는 "그려~ 팥죽이 웬수여~"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합니다.

지금은 바위가 성곽 밑에 깔려 있어 그 전설을 희석 시키고 있는 형국이 돼 버려

아쉬움을 더 남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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