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일상 탈출을 위해 여행을 선택한다고 하고
혹자는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기위해 떠난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 경우는 ‘탈출’보다는 ‘도전’에 직면해 있을 때
여행이나 산행을 하는 편입니다.
이번 설악산 공릉능선 도전도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설악산을 세 차례나 다녀왔지만 공릉능선 코스를 타 보지 못한
오기의 발동도 있었지만 지천명의 육체를 시험해 보기 위한
도전의 성격이 더 진했습니다.
무박산행이라는 부담에- 출발지 역시 충남 고향집이어서
일정이 다소 복잡했던 것도 이번 산행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 예감이 증폭됐지만
‘마음에 결정을 하면 바로 추진해야 하는 나쁜 성격 탓’에
몸 컨디션 생각없이 출발을 했습니다.
다행이 금요일 밤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 차량에 좌석이 남아 있었고
공룡능선을 주파하지 못하면 비박이라도 해야지-라는 마음의 각오도 생겨
배낭을 어깨에 걸쳤습니다.
밤 11시.
동대문 근처에서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 37번 자리에 앉으니
설렘과 기대 보다는 이게 뭔 청승인가 싶어 졌습니다.
남들은 부부 혹은 연인에 친구 등등 일행이 있는 반면
나는 딸랑 혼자였으니 말입니다.
집에서도 마눌은 외국에 살고
아들은 군대 가 있고-
산행까지 혼자하다보니 이젠 ‘홀애비’ 근성이 몸에 배 버린 것 같아 집니다.
밤 11시 정각에 출발한 버스는 양재 하남 등을 거치면서
몇몇의 예약자들을 더 태우더니 밤 2시 10분경에 설악산 인근의 한 휴게소에서
정차를 합니다.
이곳에서는 야참을 먹거나
아니면 미쳐 준비하지 못한 준비물을 챙기는
산행을 위한 전초기지와 같았습니다.
나 역시 김밥과 음료를 사 장거리 산행에 대비했습니다.
20여분간 머물다 다시 출발한 버스는 한계령을 넘어 오색 약수터에
우리를 하차 시켰는데 그때 시간이 2시40분경이었습니다.
설악산 입산 시간이 새벽 3시부터 인 까닭에 20분 정도 기다리다
정각에 산행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10여대의 대형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동시에 출발을 하자
정말 볼만했습니다. 특히 머리에 걸친 헤드렌턴 불빛 탓에
사람이 사람이 아닌 꼭 야광귀 처럼 보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내게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녁 늦게 먹은 샌드위치로 인해 속이 더부룩했었는데-
이게 한계령을 내려 오면서 멀미로 연결이 됐는지 자꾸 헛구역질이 나오고
이마에 진땀이 솔솔 배 나오는 것입니다.
남들은 언덕빼기를 오르느라 땀을 흘리는데 나는 생땀을 내고 있으니-
금세 몸이 지쳐 버렸습니다.
계속 가야나 말아야 하나-
머릿속은 온통 이 생각 뿐이었습니다.
산행 결정 전 산악회 대장이라는 분과 통화 때
‘난 꼭 공룡능선을 주파하고 싶다. 그런데 사전 운동도 부족하고
나이도 있어 부담이 된다. 어쩌면 좋겠냐‘고 상담아닌 상담을 했을 때-
산악회 대장의 우문현답이 생각 났습니다.
‘먼저 코스를 결정하기 보다는 일단 산행을 시작해 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라던-
나는 이미 그 답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최단 코스가 어디냐고 묻자 대청 중청 소청봉을 거쳐 회문각 대피소 아래서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 거리조차 내게는 엄청난 길이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앞 사람 뒷굼치만 보고 걷는데 어느새 날은 밝고-
이곳 저곳서 삼삼오오 앉아 행동식을 들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들이 늘었지만
내 몸은 임산부 처럼 음식 냄새 조차 거북스러웠습니다.
새벽 4시반 정도가 되니까 랜턴이 필요없을 만큼 날이 밝았지만
내 몸은 여전히 깊은 어둠속이었습니다.
대청봉에 오를 때까지 겨우 알사탕 두 개에 생수 몇 모금만 마셨을 정도니까 말입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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