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여행이야기

터키 이야기 - 3

by 고향사람 2014. 4. 24.

 

여신의 노천탕??? - 파묵칼레

 

 

천상서 내려온 여신이 찾아 낸 노천 목욕탕-

그것이 터키탕이라고 하면 너무 세속적일 것이고

지구 한 쪽에 있는 무인도라면 관심조차 끌지 못했을 겁니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도 반해 후다닥 옷을 벗고 뛰어들 만한

멋진 노천탕은 바로 터키 고대도시 데니즐리에 위치한 파묵칼레입니다.

멀리서 보면 전체 모습이 하얀 목화 송이를 닮았다고 해서

목화성(cotton castle)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곳은

속인은 물론 천상의 신들도 반할 만큼한 아름다움과 함께 신비함을 담고 있습니다.

목화성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이곳 말로 파묵은 ‘목화’를 뜻하고

칼레는 ‘성’이라는 의미가 있어서입니다.

 

이런 아름다움을 관조하기에는 보름달이 뜬 밤,

아니 초승달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 올라 턱을 괴고 목화성을 내려다 보자면

우린 별별 상상을 다 하게 될 겁니다.

눈앞에는 벌써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은 여신의 알몸이 보일수도 있습니다.

상상은 우리 속인들의 자유니까 말입니다^^

 

서언이 길어 진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뚝뚝 하기로 대한민국 최고라는 경상도 사내도

이 앞에서는 ‘헤-’하고 입을 벌어지게 하고

나 같은 충청도 촌놈도 ‘증말 좋은디유’ 소리만 연발했으니까 말입니다.

 

파묵칼레는 이름 자체가 어려워 설명도 쉽지 않을 것 같지만

한마디로 표현하면 석회암이 녹으면서 형성된 카르스트지형을 일컫는 말입니다.

석회암은 이산화탄소가 함유된 물에 잘 녹아 내립니다.

석회암 지대, 즉 카르스트지형인 이곳에 물이 흐르면서

높은 곳에서부터 석회암이 녹아 내리기 시작했는데-

움푹 녹아 내린 곳은 웅덩이가 되고 단단한 일반 암석은 그대로 있다보니

현재의 모습으로 그 다양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모습은 신 만이 선물할 수 있다는 거-.

터키 사람들은 조상이 지구를 구하는 공덕을 여러번 쌓았나 봅니다^^

아무튼 석회암이 만들어 낸 웅덩이와 담, 그리고 언덕은

이곳에 아름다운 테라스(계단식 논을 생각하면 연상이 됩니다) 만들었습니다.

그 모습은 질투가 날 정도로 판타스틱합니다.

 

우유빛이 감도는 대리석 욕조에 비취빛 물이 담겨있고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결 따라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모습이며

여기에다 붉은 석양까지 담아낼 때는 누구나 나르시즘에 빠져들기 십상입니다.

-나도 신이 된양 가슴이 뛰게 되니까 말입니다.

결국 신이 된 흉내는 남들 다 하는 진흙 마사지에

근처 호텔 터키탕에서 몸 지지는 것으로 끝냈습니다만^^

 

목화성 위쪽으로 흐르는 따슴한 물길에

나그네는 지친 발을 담그고 족욕을 시도하지만

그 느낌은 가슴에서부터 먼저 옵니다.

발보다 마음이 평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로마귀족들이 이런 멋진 곳을 그냥 두었겠습니까.

목화성 주위에 휴양도시를 건설하고 아예 이곳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온천물 나오지-

원형 극장서 즐길 수 있지-

고지대라서 전망 좋지(모기도 별로 없었을 것 같습니다^^ )

이 도시가 바로 히에라폴리스입니다.

 

파묵칼레의 테라스를 중심으로 건설된 이 휴양도시는

기원전 3백년쯤부터 형성되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도시의 기원은 지금 터키지역에 자리했던 페르가몬 왕국을 건설했던

텔레포스왕이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의 부인 히에라왕비를 위해

휴양지로 이곳을 선택함으로써 발전이 된 계기로 보고 있습니다.

도시 이름 역시 그 왕비의 이름으로부터 나오게 된 것은 물론입니다.

 

맛있는 것 하고 아름다움에 끌리는 것.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선인이나 현대인이 똑 같은 감탄사를 내며 바라보고 찾아 가는 곳이

바로 파묵칼레라는 사실은 이곳이 그처럼 아름답기에 그렇습니다.

 

고요한 달빛 아래 맨발로 백옥 같은 석회암 테라스를 거닐다 보면

마음속에는 별이 쏟아져 내릴 겁니다.

옆에 애인이 있다면 설령 그의 얼굴이 곰보일지라도

온통 보조개로 보일테고 말입니다^^

사랑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에-

파묵칼레에 가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답니다^^

 

 

 

‘창녀촌’ 광고했던 에베소 사람들

 

 

 

껌정고무신이 국민 대표 신발이었던 시절.

대한민국 사람들은 참 고난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흰고무신은 때가 잘 타 꺼려할 만큼 아끼고 또 아끼던 것이 미덕일 때,

창녀촌을 찾아 객기?를 부린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었습니다.

 

그런데 2천년 전(BC 7-6세기) 지금의 터키 땅에 살던

에베소 사람들은 그리스 신전 만큼이나 아름다운 도서관을 짓고

뜨신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목욕탕에-

공중 화장실까지 지어 놓고 현대인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배부르고

등 따신 남정네들이 생각해 내는 게 바로 -기집질^^인데

그 옛날 에베소에서도 마찬가지 였나 봅니다.

이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 냈기 때문입니다.

 

근데 성(性)을 팔고 사는 일은 대개 은밀하게 진행되는데

에베소 사람들은 대담하게도 성(性)을 상품화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광고까지 했다는 겁니다.

아마 대중에게 어필한 최초의 창녀촌 광고 일듯 싶어집니다.

(일부 가이드는 유럽 최초의 상업광고?라고도 소개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폼페이 유적지서 발견된 것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광고를 했을까요.

팔등신 미녀의 나신(裸身) 그림이나 신체 사이즈,

가령 가슴둘레와 엉덩이 등을 상징으로 내 세웠을까요.

 

이 역시도 우리의 상상은 에베소 사람들을 쫒아 가지 못합니다.

홍등가(紅燈街) 그러니까 성을 파는 장소를 알리고

또 출입자격을 규정하기 위해 이들이 만들어 낸 광고는

하트♥︎ 문양과 한 개의 발자욱 모양으로 돼 있습니다.

 

색다른 것을 상상???했다면-

-그게 어찌 광고가 되느냐며 역정을 낼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민망함을 감추기에는 역정만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대로 변 한 귀퉁이에는 상처 투성인 하트 모양의 그림과

발바닥을 본 뜬 모양이 돌 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오랜 시간 연구 끝에 학자들이 내 놓은 결론은 바로

‘마음이 공허한, 혹은 위로 받고 싶은 이들은 이곳으로 오시오’(상처난 하트 모양)

라는 뜻이고 발자욱은 그곳에 자신의 발을 대 봐서 그것이 본인 발 보다 크면

아직 미성년자인 까닭에 출입하지 마시오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는 겁니다.

 

- 그럼 어른이 돼서도 기형적으로 발이 작은 사람은 어떡허나.

답은 간단합니다.

어른이니까 집에서 마누라하고 놀면?되지요^^

 

에베소 사람들은 수시로 공중 목욕탕을 찾고

원형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고 이것도 부족하다 싶으면

더러 홍등가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에베소 사람들은 놀기만 좋아 한 것 같은데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이들이 건립한 셀수스 도서관의 규모를 보면 입이 벌어 질 정도입니다.

이 도서관은 AD100-110년경 원로원 의원인 셀수스(Celsus)에게 헌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보관된 장서만 1만 2천 여권에 이르렀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파괴된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아직도 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해

그 모습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도서관 유적입니다.

 

잘 놀면서 공부?도 제대로 할 줄 알았던 에베소 사람들의 정신세계,

그것이 바로 세계를 지배할 만큼의 부와 권력을 갖게 한 요인이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이 가장 얄미운 놈으로 손꼽는

‘얼굴도 이쁜게 공부도 잘하는- 녀석’이 바로 에베소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내 별명이었는데- 이쁜게 공부도 잘하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하기로 홍등가 광고까지 대로(大路)에다

버젓이 새겨 놓은 것은 좀 그렇습니다.

-에베소가 어떤 곳입니까.

바로 성경에 나오는 유명 인사 바울이 이곳에서 사목을 했고

더불어 초기 교회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성지이기 때문입니다.

성(聖)스러운 곳이 성(性)스럽기도 했다니-

믿어지지 않는 대목입니다.

 

에배소는 요한계시록의 무대가 되었고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노년을 보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는 사도 요한의 교회 터가 있습니다.

또 에베소는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많은 한국 기독교 성도들이 이 지역을 찾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에베소 유적중 또 하나의 걸작은 2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입니다.

지금은 복원도 잘 돼 있어 바로 공연을 해도 될 만큼 완벽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이밖에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었고,

모든 황제들의 신전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에베소가 이 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곳이 당대 아시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였었고

더불어 육지의 모든 도로는 에베소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지중해로 진출하는 아시아의 관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에베소를 일컬어 ‘아시아의 빛’이라 불렀습니다.

지금은 폐허의 도시로 그 흔적만 남아 있지만 말입니다.

 

에베소의 흥망성쇠(興亡盛衰)-

그것이 후세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교훈은 다양할 겁니다.

나 처럼 창녀촌 광고물에 발을 맞춰 보며

그곳 출입 여부나 가늠해 보는 소인배도 있지만

옛것을 반추하며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이들도 적지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신혼이거나 아이없는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이

에베소(애? 배소서)라고 우기는 이들도 있는 것 처럼

에베소 지역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흥미를 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더 가보고 싶은 과거의 타임캡술로 다가옵니다. 지금도-

 

 

'산행-여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악산 공룡능선을 넘다 (1회)  (0) 2014.06.09
터키 이야기 - 4  (0) 2014.04.29
터키 이야기 - 2  (0) 2014.04.24
터키 이야기 - 1  (0) 2014.04.24
포천 아트밸리  (0) 201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