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8일은 금식하는 날입니다.
아버님 기일(忌日)이라서 그리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생전에 불효한 과거에 대한 자책이자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에
이 날은 과일 한 조각도 먹지 않습니다.
필리핀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우들은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냐며 먹을 것을 권하지만
이젠 햇수가 오래되다 보니 잘 했지 싶어지기도 합니다.
올해도 금식을 했습니다.
배가 고플수록 아버님에 대한 추모의 정도 깊어지고
장남으로서 책무도 더 진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늦은 오후부터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꾸 얼큰한 국물요리가 먹고 싶어 지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매운라면이 눈에 어른거려 혼났습니다.
스스로가 불경(不敬)스럽다 여겨질 만큼 말입니다.
-아니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올리며 추모의 정을 키우기 위해
금식을 하는 차에 자꾸 매운 라면만 떠오르니-
정말 난감했습니다.
누구한테 말할수도 없는 일이라 더 그랬습니다.
이건 뭔 시츄에이션인가 싶어 책도 읽고 주변 산책도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꾸 맵고 얼큰한 것만 생각나니-
속담에 개꼬리 3년 묻어 놔도 황모(黃毛)안된다고
불효자가 밥 몇 끼 굶으며 효자행세하려는 것 같아서
돌아가신 아버님께 죄송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아버님 생전엔 물론 돌아가신 후에도 한 없이 크게 느껴지던
그 그늘이 늘 그립습니다.
난 언제나 가족과 이웃, 사회를 위한 큰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을런지-
몸뚱이만 어른인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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