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

불효자의 생색내기 아니었던가-

by 고향사람 2013. 8. 19.

매년 8월8일은 금식하는 날입니다.

아버님 기일(忌日)이라서 그리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생전에 불효한 과거에 대한 자책이자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에

이 날은 과일 한 조각도 먹지 않습니다.

 

필리핀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우들은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냐며 먹을 것을 권하지만

이젠 햇수가 오래되다 보니 잘 했지 싶어지기도 합니다.

 

올해도 금식을 했습니다.

배가 고플수록 아버님에 대한 추모의 정도 깊어지고

장남으로서 책무도 더 진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늦은 오후부터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꾸 얼큰한 국물요리가 먹고 싶어 지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매운라면이 눈에 어른거려 혼났습니다.

 

스스로가 불경(不敬)스럽다 여겨질 만큼 말입니다.

-아니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올리며 추모의 정을 키우기 위해

금식을 하는 차에 자꾸 매운 라면만 떠오르니-

정말 난감했습니다.

누구한테 말할수도 없는 일이라 더 그랬습니다.

 

이건 뭔 시츄에이션인가 싶어 책도 읽고 주변 산책도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꾸 맵고 얼큰한 것만 생각나니-

속담에 개꼬리 3년 묻어 놔도 황모(黃毛)안된다고

불효자가 밥 몇 끼 굶으며 효자행세하려는 것 같아서

돌아가신 아버님께 죄송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아버님 생전엔 물론 돌아가신 후에도 한 없이 크게 느껴지던

그 그늘이 늘 그립습니다.

난 언제나 가족과 이웃, 사회를 위한 큰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을런지-

몸뚱이만 어른인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음엔 돌리지 말고 끓여라  (0) 2013.08.27
내가 돈을 못 버는 이유는-  (0) 2013.08.21
필리핀에 살면서 가장 큰 걱정은-  (0) 2013.08.16
바퀴벌레의 복수??  (0) 2013.08.12
제발 밥 좀 먹자  (0) 2013.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