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生老病死) -
인생을 함축한 단어치고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자연의 이치이자 숙명(宿命)임에도 인간은 이것조차도 초월하려고 한다.
유전자나 장기를 바꿔서라도 명(命)을 길게 하려는 욕심이
동서고금(東西古今)을 가리지 않기에-
나 역시 왜 아니겠는가.
지천명을 넘어서면서 무뎌지기만 하는 몸과 마음이
척도(尺度)를 가늠할 수 없게 한다.
이런 날-
내 눈 앞에 나타난 한 편의 시가 얄밉다.
“늙으매 병이 서로 따르니(老與病相隨)/
일평생 포의의 신세(窮年一布衣)/
현화(玄花·병든 눈동자)는 아스름하고(玄花多掩映)/
눈동자[紫石] 광채 적구나(紫石少光輝)/
등불 앞에 글자 보기 겁이 앞서고(怯照燈前字)/
눈 온 뒤에 햇빛이 부끄러워라(羞承雪後暉)/
조금 있다 금방(金榜)이나 보고 난 뒤에(待看金?罷)/
눈감고 들어앉아서 세상 일을 잊으리(閉目坐忘機)”.
(고려 중기의 글 재주꾼 오세재(吳世才·1133~?)의 시 ‘병든 눈[病目]’이다.
번역은 양주동 선생의 『동문선(東文選)』(1968)본이다)
병목(病目)이란 제목의 시인데-.
과거 합격자 명단인 ‘금방’에 이름 석 자 올리려는
만년 고시생 포의(布衣)의 푸념이 내 처지와 다름없다.
눈은 점점 희미해 지고
정신 역시 오락가락하는 탓에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요
내 마음 조차 내것인지 모르고 사는 날이 더 많으니-
살아 무엇하냐던
조부(祖父)의 말년 푸념이 내것이 된지 오랜 것 같다.
-눈감고 들어앉아서 세상 일을 잊으리(閉目坐忘機)라고 했던
고(古) 선비의 시 처럼 나 역시 이제는 들어 앉을 때가 된거겠지.
6월-
붉은 빛 만큼 강한 진록(眞綠)이
찬란해서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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