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

이런 날엔-

by 고향사람 2013. 6. 24.

생로병사(生老病死) -

인생을 함축한 단어치고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자연의 이치이자 숙명(宿命)임에도 인간은 이것조차도 초월하려고 한다.

유전자나 장기를 바꿔서라도 명(命)을 길게 하려는 욕심이

동서고금(東西古今)을 가리지 않기에-

 

나 역시 왜 아니겠는가.

지천명을 넘어서면서 무뎌지기만 하는 몸과 마음이

척도(尺度)를 가늠할 수 없게 한다.

 

이런 날-

내 눈 앞에 나타난 한 편의 시가 얄밉다.

 

“늙으매 병이 서로 따르니(老與病相隨)/

일평생 포의의 신세(窮年一布衣)/

현화(玄花·병든 눈동자)는 아스름하고(玄花多掩映)/

눈동자[紫石] 광채 적구나(紫石少光輝)/

등불 앞에 글자 보기 겁이 앞서고(怯照燈前字)/

눈 온 뒤에 햇빛이 부끄러워라(羞承雪後暉)/

조금 있다 금방(金榜)이나 보고 난 뒤에(待看金?罷)/

눈감고 들어앉아서 세상 일을 잊으리(閉目坐忘機)”.

 

(고려 중기의 글 재주꾼 오세재(吳世才·1133~?)의 시 ‘병든 눈[病目]’이다.

번역은 양주동 선생의 『동문선(東文選)』(1968)본이다)

 

병목(病目)이란 제목의 시인데-.

과거 합격자 명단인 ‘금방’에 이름 석 자 올리려는

만년 고시생 포의(布衣)의 푸념이 내 처지와 다름없다.

 

눈은 점점 희미해 지고

정신 역시 오락가락하는 탓에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요

내 마음 조차 내것인지 모르고 사는 날이 더 많으니-

 

살아 무엇하냐던

조부(祖父)의 말년 푸념이 내것이 된지 오랜 것 같다.

-눈감고 들어앉아서 세상 일을 잊으리(閉目坐忘機)라고 했던

고(古) 선비의 시 처럼 나 역시 이제는 들어 앉을 때가 된거겠지.

 

6월-

붉은 빛 만큼 강한 진록(眞綠)이

찬란해서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