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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해삼 & 씨 쿠쿰버

by 고향사람 2013. 1. 25.

해삼 & 씨 쿠쿰버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를 때가 많습니다.

특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을 쓸 때 아와 어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됩니다.

돈과 돌이 받침하나 차이지만 뜻이 엄청 다른 것 처럼 말입니다.

 

하물며 한국말과 영어의 차이는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여기에다 따글로어와 바사야어를 주로 쓰는 피노이들과의 대화라면야

언어의 유희가 아닌 언어도단(言語道斷)일 때가 더 많습니다.

외국생활이 힘든 가장 큰 이유중 하나입니다.

 

어제께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다 보니 해삼이 소개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와 저거 한 접시 먹으면 더위도 싹 가시겠다 싶어

군침을 흘리며 열심히 지켜보다가 갑자기

영어로는 해삼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났습니다.

 

얼른 영어 사전을 들춰봤더니 생뚱하게도 ‘씨 쿠쿰버’(sea cucumber)

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별칭-a trepang; a sea slug)

쿠쿰버(cucumber)라면 오이- 바다 오이????

하기사 표면이 거칠거칠한게 오이와 비슷하게 보일수도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해삼(海蔘)을 바다의 인삼(人蔘)이라고 여기는 것과는 사뭇다릅니다.

영어권에서는 겨우 오이 정도로 밖에 취급을 해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삼과 오이라-

이거야 말로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대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 해삼을 먹을 때 작고하신 아버님께서는 이걸 먹으면

인삼 하나 먹는 것과 같다며 접시를 자꾸 내 쪽으로 밀어 놓았었는데-

그렇다면 코쟁이들은 해삼을 먹으며 오이하나 먹는 걸로 여길까 싶어집니다.

 

이름 하나에도 단어 선정을 신중해 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새삼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오이 취급을 받는 것과 인삼 대접을 받는 것,

어느 것이 좋겠냐고 물어 보고 싶어집니다. 해삼에게 말입니다.

 

해삼이 이 속뜻을 알아 차린다면 아마 다 한국 앞 바다로 몰려들지 싶어집니다.

좀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싶어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오늘부터는 소문 좀 내야 겠습니다.

오이 취급받기 싫은 해삼은 한국 가서 인삼 대접 받으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