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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필리핀서도 비 내리는 날은 -

by 고향사람 2012. 7. 13.

주룩 주루-룩

종일 비가 내리면

어디선가

칼국수 내음이 묻어 난다

 

오래 된 토담 아래선

목쉰 개구리 울음이 거칠지만

노란 우비 입은 아이들

맛난 웃음소리

하굣길 열리는 오후라 좋다

 

-엄니

뭐 없슈-

간절히 소리 지르던 추억 아니라도

 

아내가 들고 온 소반엔

숭숭 썬 애호박 고명 얹은

착한 칼국수가 雨中을 덮는다

 

그려

오늘은 비 내리는 날

어이 칼국수가 빠지랴

 

부치미에 막걸리 한 잔

곁들여 오면

마눌이 더 예뻐 보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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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는 필리핀 민다나오 섬은 울란(비-우기) 시즌이 되면서

비 내리는 날이 많아 졌습니다.

오후만 되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울란.

 

그 요란한 빗소리만큼이나 아우 둘이 뭔가를 한참 옥신각신 하더니

막내가 갑자기 가방을 꾸리며 집에 가자고 성홥니다.

뭔 일인데- 아직 퇴근시간도 안됐잖여

그러자 막내는 저녁에 칼국수를 끓여야 된다며 준비를 하려면

먼저 퇴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우 둘이 목소리를 높였던 건 서로 칼국수는

자기가 더 잘 끓일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목소리가 좀 더 큰 막내가 이겨 결국은 나까지 따라 나섰습니다.

 

한국 식품점에 들러 이것저것 사서 집에 들어가 칼국수를 끊이는데-

저녁 준비하다가 부엌을 통째로 빼앗긴 헬퍼 표정이 묘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두어시간 뒤 칼국수가 완성이 될 즈음 외사촌 아우도 퇴근을 했습니다.

여직원들까지 다 데리고 말입니다.

 

고추에 김 쑥갓까지 고명으로 얹어 나온 칼국수는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피노이들까지 ‘야미야미’(맛있다)하며서 한 그릇 뚝딱 비웠을 정도니까 말입니다.

아우들 역시 맛나게 먹던 중 음식을 장만한 아우가 소리칩니다.

 

‘아차 겨란 풀은 것-’ 결국 겨란 만 잔뜩 풀어 놓고는 그걸 넣지 않은 겁니다.

그것만 넣었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었을 거라는 아우의 말이 아니라도 어제는 빗소리 들으며 먹는 칼국수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필리핀에서 먹는 거라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우기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이번에는 칼국수 많이 끓여 먹게 생겼습니다.

아우 둘이 서로 자기가 더 잘 끊인다며 난리니 말입니다^^

나야 말로 원님 덕에 나팔 불게 생겼습니다.

얻어 먹고 평가만 해 주면 되게 생겼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