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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야기

필리핀에서 ‘기적’을 봤습니다(1)

by 고향사람 2011. 10. 11.

10월4일 오전10시-

민다나오 북단 도시인 수리가오시티 인근에 있는 광산지대에서는

대형 사건이 있었습니다. 신인민군(NPA) 2백여명이 일본인이 운영하는 광산에 난입,

가드 3명을 살해하고 인질 수 십명을 잡고 수많은 중장비와 트럭에 이어

바다위에 떠 있던 바지선까지 불 태우고 도주한 사건입니다.

 

수미토모 광산 일대는 필리핀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가장 큰 니켈광산지대에 속합니다.

이곳에서는 크롬과 니켈, 구리등을 생산해 전량 수출이 되고 있는데

일본인 광산이 제일 큽니다. 최근에는 대형 제련설비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건 현장과 수 백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우리 사무실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뻔 했습니다. 중장비 임대&판매를 하고 있는 우리 사무실인지라

이곳 광산에 배코(포크레인) 다섯 대를 임대해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건 당일 우리는 일상과 다름없는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파견된 직원으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지금 반군이 난입해 인정사정없이 닥치는 대로 불태우고 있다는 겁니다.

그중 현장에 있던 우리 포크레인도 방화로 인해 전소됐다며 말입니다.

 

가장 크고 성능 좋은 장비만 보낸 곳이라서 우리 걱정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대당 가격이 수 천 만원씩 하는 장비가 반군의 수중에서 불타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보고에 포크레인 290이 타고 있다는 전화였는데 이어서 다른 장비로

불길이 번지고 있어 머잖아 불 탈것 같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파견된 직원들도 건물 한 켠에 억류돼 있어 어쩌지도 못한다는 겁니다.

그나마 몰래 전화와 문자를 보낼 수 있는 것도 다행이라며 말입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런 경우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워낙 큰 규모의 광산이었고 더군다나 일본인 회사라서 안심하고 중장비를 임대했는데

그런 곳에서 우리 포크레인이 불타고 있다니 말입니다.

현장 직원들과 문자를 주고 받으면서 우리도 대책모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별로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필리핀 정부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 같은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낙담해 기적을 바라며 다음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녁 때가 돼서야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장비가 무사하다는 전화 였습니다. 수 십대의 장비들이 방화로 전소됐는데

약간 언덕에 있던 우리 포크레인은 작업을 멈춘 상태 그대로 있다는 겁니다.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기운 빠졌던 몸에서 생기가 돌기시작하니 은근히 화도 났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잘 알아 보지도 않고 우리 포크레인이 불탔다했냐’고 따져 물었더니

우리 것과 크기와 색깔이 동일한 다른 회사의 것이어서 착각했었다는 겁니다.

 

오후 세 시경 반군들이 철수했다는 연락을 받고 아우가 바로 현장으로 쫒아 갔습니다.

직원들의 안위를 확인하고 장비들을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틑 날 현장을 다녀온 아우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정말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 포크레인은 흙더미 위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게 불과 몇 미터 높이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위에 오똑하니 서 있더라는 겁니다.

물론 2-3미터 아래에 있던 다른 포크레인들은 다 전소됐고 말입니다.

 

무장 반군들이 흙더미를 밟고 몇 미터 더 올라가기가 귀찮았던지

아님 평지에 있는 다른 장비들을 불태우기에 바빠 그냥 지나쳤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유일하게 우리 포크레인만 무사했답니다.

다른 곳에서 작업하던 3대도 아무런 손상없이 온전히 보존돼 있었고 말입니다.

 

이날 사건으로 수 십대의 대형 트럭이 전소됐고 또 불탄 불도저와 로더 포크레인이

몇 대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장비가 불에 탔습니다.

바닷가에 정박해 있던 바지선도 서 너대가 붙탔으며 광산사무실 숙소등도 전소된 곳이 많았습니다.

현장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니 말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피해액만도 수백억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것이 무사했다는 것은 기적으로 밖에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날 이후 우리는 기적을 믿고 있습니다.

이 나라 일간지 톱기사로 사건이 보도되고 방송에서 연일 속보를 내 보내는 것을 보면서

 

아우와 나는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 됐습니다.

앞으로 수습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이왕지사 기적을 본 만큼 이 땅에서 꼭 성공해

이번 사건 주동자인 반군은 물론 피노이 모두에게도 기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기적- 여러분도 믿고 열심히 일해서 같이 성공하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