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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야기

럭셔리한 우리 텃밭-피노이 청년 덕이래요

by 고향사람 2011. 10. 8.

곡식이나 채소를 붙여 먹는 텃밭도 럭셔리 해 질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새로 온 빌리저(집안 도우미-남자. 여자는 헬퍼로 통칭)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촌에서 성장하고 역시 촌에서 살던 ‘아벨’이라는 청년을 통해서입니다.

 

대학을 다니다 돈이 없어 중퇴한 아벨이 발렌시아에 있는 우리 집에

취업?을 한지가 서너달쯤 됐습니다.

그런데 집안 곳곳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당 구석에 세워 놓은 바하이 쿠보(필리핀식 원두막?) 둘레에 꽃밭이 조성이 되고

집 앞 난초 화단은 이발사가 다녀간 듯 말끔하게 정리됐습니다.

이 정도는 새 일꾼 티를 내는 행동이거니 하고 무관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잔디 마당에는 잡초가 사라지고 이웃과의 경계선에

심어 놓은 나무도 매일 손질이 돼 있습니다.

 

닭장 지붕위로 호박덩쿨이 뻗게하고 쓰레기는 재활용을 구분해 버립니다.

솜씨도 좋아 막힌 변기도 뻥뻥 잘 뚫어 놓는 가 하면 이웃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과일도 잘 얻어 오는게 여느 피노이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여기에다가 텃밭은 얼마나 잘 가꿔 놓았는지-

밭고랑에 대나무룰 박아 놓아 장대비에도 흙이 쓸려 나가지 않게 했고

심은 야채도 한국말과 영어로 펫말을 만들어 놓아 무슨 작물인지를 알게 해 놨습니다.

 

한글을 어찌 알았냐고 했더니 씨앗 봉토에 써 있는 글씨를 그대로 흉내 내 썼다는 겁니다.

머리 돌아가는 게 마누라가 내 비상금 봉투 찾아내는 것 보다 더 빠릅니다^^

시골 청년답지 않게 싹싹하고 생글생글 웃는 인상이 좋아

무조건 빌리저로 들였는데 이 청년이 바로 굴러 들어온 복덩이였습니다.

 

농땡이 한 번 피지 않는 이 청년-

내년에 복학할 때는 학비도 대줘야 할 것 같습니다.

부지런한 개가 뜨신 똥을 먹는다고-

어디 누구와 살아도 열심히(부지런히) 일하는 이는 눈에 띄게 돼 있습니다.

 

조그만 우리 텃밭을 럭셔리하게 꾸며 놓은 이 청년을

이제 우리가 럭셔리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줄겁니다.

상부상조는 피노이와 한국인 모두에게 복이 된다는 거-

강조할 필요도 없는 덕목인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