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년 만에 기러기 아빠 생활을 접고 필리핀에 다시 들어 올 때였습니다.
긴 헤어짐 속, 상봉인지라 이것저것 챙길 것도 많았습니다.
밑반찬에 상비약, 그리고 옷가지며 전자제품까지-
이 중에는 집사람을 위한 특별한 선물도 있었습니다.
이 선물은 내가 생전 처음 장만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남사스러워서 몇 번을 망설였었지만 필리핀서는 구하기기 쉽지 않을 듯 싶어
큰 마음 먹고 몇 통 준비했습니다. 낯 뜨거움을 감수하면서 말입니다.
이 특별한 선물은 다름 아닌 아내가 쓰던 생리대였습니다.
설마 필리핀에 생리대가 없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쓰는 것은
좀 독특했습니다. 수영장을 다니면서 사용하던 것으로----.
그래서 필핀에서는 구하기가 까다롭겠지 싶어 약국에 들러 아예 몇 년 치를 사온 것입니다.
경황없이 필리핀에 도착해 아들과 마눌이 있는 집에 와서 짐을 풀었습니다.
얼마나 정신없이 짐을 쌓으면 한국 집에 있던 걸레수건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헬퍼가 이걸 보면서 무어냐고 집어 들었을 때에야 알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마눌에게 생리대를 사왔다고 하면서 건네주자
마눌이 그 통을 보더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에구 이 여편네 감격 먹었네. 겨우 생리대 몇 통 가지구-’
나 역시 계면쩍기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왜 그래 그거 필리핀서 구하기 힘들 것 같아서 염치불구하고 사왔다구’
그런데 아내는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한 참을 울더니 생리대 통을 한 켠으로 치워 버립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젠 소용없는 물건이네요’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물건을 잘 못 사왔나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는 이미 생리가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아직은 아닌데 말입니다.
아마 남편없이 타국생활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 역시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어져 있던 2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란 생각이 들어 섭니다.
겉으로는 ‘아 이제는 시원하겠네. 귀챦을 일 없고-’
위로가 되라고 한 말은 아니지만 마땅히 할 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는데-.
어느 날 옷장을 뒤지다 보니 내가 사온 생리대가 깊숙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버린 줄 알았는데 그게 옷장속에서 보이니까 이번엔 내 마음이 심란해 졌습니다.
저걸 어디에 쓰려고-
다시 생리가 터질 것을 믿고 있는 눈치도 아니던데.
아마 그 마음이 내가 마누라 생리대를 챙길 때 그 마음과 닮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러기 아빠 -
기러기 엄마 -
마음만은 ‘기러기’가 되지 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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