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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초안산'의 아카시아꽃

by 고향사람 2007. 5. 21.
 

서울에서 의정부 방향으로 전철을 타고 가다 월계역 부근에서

왼쪽으로 보면 야트막한 산자락이 보입니다.

고향집 근처의 뒷동산을 연상케 하는 자그마한 이 산은

‘초안산’이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름도 생소해 주변에 살고 있는 이들조차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지만

아카시아 나무가 많은 산이라고 하면 금세 알아듣고 ‘아- 그 산’하는 그런 산입니다.

이 산은 4월말부터 5월초까지 온 산을 하얗게 물들일 만큼 아카시아 꽃을 피워대는데

덕분에 꽃과 향에 취해 ‘사랑가’를 부르는 이들도 적지가 않습니다.

아마 서울시내, 아니 전국적으로 살펴보아도 이 처럼 아카시아 나무가 많은 곳은

좀 처럼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만큼 온 산이 이 나무로 뒤 덮여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아카시아 꽃과 향을 참 좋아 해 가끔씩 일부러 이 산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이곳에 올 때마다 아카시아 꽃과 향에 취하기보다는

가슴이 뭉클한 감정에 휩싸인곤 합니다.

이곳 아카시아 나무에 관한 사연을 알고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초안산에는 아카아나무 보다 훨씬 오래된 무덤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무덤이 여느 신분의 무덤 아니라 한 많은 ‘내시’와 ‘궁녀’들의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서울 경북궁에서 볼 때 초안산은 북쪽에 해당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북망산천에 간다는 말처럼 이들은 죽으면 음의 기운이 강한

이 초안산에 와 묻혀 이들의 공동묘지가 돼 버린 것입니다.

일가친척도 마땅치 않았던 내시와 궁녀들이 죽으면 시구문으로 빠져 나와

이곳에 묻히곤 했는데 조선시대 때에 묻힌 이들의 무덤이 9백기 가까이나 됩니다.


어찌 보면 궁궐뿐만 아니라 성 밖에서 조차 이방인 취급당했을

이들의 고난한 삶을 마감한 이곳이 황폐해 진 것은 일제시대 때라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공동묘지를 일부러 훼손하기 위해 이곳에 아카시아 나무를 심고

그 씨를 수십 가마니나 뿌려대 오늘날 산 전체가 아카시아 나무로 덮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연을 모르는 이들은 그저 아카시아 꽃이 좋고 향이 좋다고 말하지만

내용을 알고나면 그 꽃과 향이 죽은 영혼들이 혼이 되어 내리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매년 4 -5월이면 흰 눈과 같은 아카시아가 피고 지면서 이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아카시아 꽃이 비가 되어 내리는 날,

초안산 길을 걷다보면 궁녀가 입었던 옷자락처럼 하얀 꽃잎이 미소를 만들고

내시가 궁중에서 피웠을 향 처럼 그윽한 아카시아 꽃 향이 진동합니다.


지금 초안산 일대가 그렇습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이들이라면 한 번 올라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올망졸망한 흙무덤이 널려 있고

가끔씩은 문인석과 비석이 세워져 있는 내시 무덤이 발견이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 삶에서 한 발 비켜 서 있는 초안산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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