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터키 속 그리스마을-
언뜻 인천에 있는 ‘화교촌’(중국인마을)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겠지만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성격이 한 참 다릅니다.
제목으로만 보면 정(精)이 묻어나고 낭만이 깃들 것 같은 분위기지만
실상은 터키와 그리스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 처럼 가깝고도 먼, 아주 먼 나라들입니다.
지금도 영토, 특히 섬 소유권으로 인한 분쟁은
양국이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두 나라간의 반목(反目)은 15세기 중엽인 1503년,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그리스를 침략하면서 시작이 됩니다.
이 침략으로 그리스는 오스만 튀르크의 한 주(州)로 전락했고
3백년 넘게 식민지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핍박 받은 36년의 침략사로도 치가 떨리는데-
3백년간 소작농 신세를 면치 못했던 그리스인들의 분노는 아마 뼈에 사무치고도 남았을 겁니다.
더군다나 근세에 발발했던 그리스 왕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일어난 전쟁(그리스-터키 전쟁 1919년~1922년)은 이 두 나라 사이를 완전히 벌어지게 한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전쟁은 그리스가 시작했으나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이 승리함으로써 그리스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됐습니다.
그러니 터키와 그리스는 선린(善隣-선한 이웃)이 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양국간의 전쟁은 지금도 진행중?인데- 바로 축구시합 때 마다 터지곤 합니다.
일례를 들면 터키 축구팀이 타 국가에서 시합을 하는 날이면
자국민 보다 더 많은 그리스인이 몰려 든다고 합니다.
터키팀을 응원하러-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리스와는 아무 상관없는 상대편을 목이 터저라 응원하는 겁니다.
제발 터키팀을 박살 내달라고 말입니다^^
자비를 들여 다른 나라에 까지 가서 원수 같은 터키팀을 이겨 달라고
무료?로 응원을 해 줄 정도로 그리스인들은 터키를 싫어합니다.
그러고 보면 축구 한-일전때마다 나타나는 치열한 응원은
귀여운 수준밖에 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실에 ‘터키속 그리스마을’-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겁니다.
이 마을이 바로 셀축 시내에서 8km 정도 떨어진 산골에 위치한 ‘쉬린제’입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산속동네’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여느 관광지 보다 더 활기찬 모습을 보게 됩니다.
빨간 지붕에 하얀 벽,
좁은 골목으로 연결된 마을이라선지 이곳에서는
욕심도 내려 놓고
사랑도 비워 버리고
마음 속에 쉼표만 잔뜩 찍어 버리고 싶은-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 오르게 합니다.
쉬린제 마을의 가옥들은 이곳이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기 이전,
그리스 사람들이 살던 곳인지라 아직도 그리스 양식의 가옥들이 대부분입니다.
지금 주민들은 거개가 터키인이지만-
그래도 주변 분위기가 그리스를 닮았다해서 여전히 그렇게 부릅니다.
-터키 속 그리스 마을이라고
노예로 끌려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고향마을을 생각하면서 돌을 쌓고 회를 바르며
어렵게 조성한 마을이 바로 지금의 쉬린제가 된 것입니다.
처음 이들은 마을 이름을 치르킨체(Cirkince)라 지었다고 합니다.
이 말 뜻은 ‘추악한 동네’라는 것이랍니다.
이 아름다운 산하를 배경으로 조성된 동네가 추악하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침략을 당해 조국을 빼앗겼던 경험이 있는 터라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곳을 탐낼 것을 두려워 ‘올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그들 스스로가 추악한 동네라고 미리 소문을 내 버린 것입니다.
현재 이 마을은 행정구역상 이즈밀 주에 속합니다.
이 주에 속하기 전 이즈밀 주지사는 행정명령으로 동네 이름을
쉬린제(Sirince)로 바꾸게 했는데 쉬린제는
터키어로 ‘상쾌한 마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상쾌동(마을)- 정말 마을 풍광과 어우러지는 멋진 이름입니다.
이 마을 초입에는 과거 초등학교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
레스토랑으로 만들어 이 지역서 생산된 각종 와인을 맛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약 250년 전 동네사람들이 돈을 모아 학교를 짓고
지하엔 마을 공동 포도주 저장고(Cellar)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으로는 오디술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올리브나무가 온 동네를 둘러싸고 있지만 뽕나무도 적지 않습니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로 담근 오디술-
그 술맛이 최고 라고 하는데 술을 먹지 못하는 까닭에 상상만 해 봤습니다.
대신 유창한 한국말로 시음(시주)을 권하는 터키 젊은 이의 활달한 모습이
역시 상쾌마을 답다는 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정에 취하나 술에 취하나 취하는 건 마찬가지 일테니까 말입니다^^
터키의 서쪽 에게해에서 불어 오는 따스한 바람.
그 바람이 이 마을에 식재된 포도, 복숭아, 사과, 자두, 배, 석류, 멜론에게
기운을 나눠줘 이 마을이 와인생산지로 유명세를 떨치게 한 것입니다.
마을 한 가운데 언덕에 자리한 이슬람 성원과 손수레 한 대 지나기도 벅찬
좁은 골목으로 이뤄진 쉬린제마을이지만-
그리스인들의 핏속에 남아 있는 예술혼은 곳곳에 아름다움을 새겨 놓았습니다.
따라서 이 마을은 한 바퀴 돌아 보는 것 만으로도 육신과 영혼이 힐링이 된다는 거-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닐것입니다.
와인 한 잔 걸치면 분위기까지 더 업 될텐데 말입니다.
아쉽다- 술 마시는 것 좀 배워둘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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