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바코(포크레인) 기사인 ‘호세 본소’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내 방에 들어 왔습니다.
50넘은 나이에 삐쩍 마르고 피부까지도 유난히 검어
보기만 해도 동정이 가는 그런 직원이었는데-
오늘 아침은 주름진 얼굴에 근심까지 잔뜩 달고는
나를 찾아 온 겁니다.
바코 기사라서 현장에만 있어 얼굴 보기 힘든 직원인데 이 시간에 왜? 하며
나 역시 이상한 생각이 들어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오늘 하루 쉬게 해 달라며 결근계를 가져 온 겁니다.
-뭔 일인데.
그러자 이 기사는 대답대신 그 휑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입니다.
직감적으로 집안에 우환이 있지 싶었는데
그의 대답은 더 의외였습니다.
스물다섯살 난 딸이 있는데 그 남자 친구가 권총을 쏴 현장서 즉사했다는 겁니다.
사소한 일로 몇 번 다툰 것이 원인이 됐는지-
이 소식을 듣고 현장서 급히 돌아 온 포크레인 기사가
잠시 짬을 내 결근계를 가져온 겁니다. 전화로 해도 될일인데 말입니다.
딸 잃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그이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미안하다며 그 손을 잡았는데-
뼈만 앙상한 손이 그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빨리 가보라고 하고나서
경리 아가씨를 불러 조의금을 챙겨 주도록 했습니다.
뻥 뚫린 가슴에 돈 몇 푼이 무슨 위로가 되겠냐 싶었지만
경황없는 중에 장례를 치르려면 그나마 돈이 힘이 될 테니까 말입니다.
총기 소유가 쉽고, 총 빌리는 건 더 쉬운 나라 필리핀.
그래선지 몰라도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총기 사건은
미국보다 훨 심한 것 같습니다.
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기사화되지도 않기에 더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일 잘하고 사람 좋기로 유명한 우리 기사가
빨리 마음 회복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일터에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외국서 살다보니 상상하기도 힘든 일들을 곧잘 경험하게 됩니다.
총으로 여자 친구를 쏴 죽이다니-
어떤 녀석인지 죽지 않을 만큼 때려 줬으면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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