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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이 정도면 잔치상이지

by 고향사람 2012. 5. 26.

요즘 우리 집 밥상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집니다.

‘임금님의 밥에 걸인의 찬’이었을 만큼 반찬이 엉망이었었는데-

지금은 말 그대로 진수성찬입니다.

그것도 매 끼니마다 말입니다.

 

우리 집 헬퍼인 ‘조이’는 이제 스무살된 피노이 아가씨입니다.

심하게 굵은 허벅지를 마다않고 핫 팬츠를 고집하는 것 빼고는

나무랄데 없는 헬퍼입니다.

 

제수씨한테 배운 한국 음식 솜씨도 훌륭하고

출퇴근 때마다 문밖까지 나와 고개 숙여 인사할 줄 아는 예의도 갖췄습니다.

또 매번 눈길이 마주추칠 때마다 보조개가 쏙 들어 갈 만큼

시원하게 웃는 모습도 여느 피노이와는 다릅니다.

 

이런 훌륭?한 헬퍼덕에 아우들과 나는 끼니 걱정없이 잘 지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는 밥상이 비좁을 만큼 음식 숫자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누구 생일이니-하고 의미심장하게 묻자 헬퍼가 배시시 웃기만 합니다.

간장 고추장에 국 그릇까지 다 세어보니 반찬이 20가지가 넘습니다.

물론 김치와 장아찌 된장 고추장 김 등 기본 찬이 있다지만

그래도 나머지는 매번 새로 하는 반찬입니다.

 

언뜻 보면 잔칫상 같습니다.

이 정도 반찬이면 한정식 부럽지 않다며 내가 맛나게 먹자

옆에 있던 아우가 한 참을 웃더니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성님. 이게유 다 내 덕이랑께유.

내가 뜬금없이 뭔 소리하고 있냐고 하자 아우가 뒷말을 잇습니다.

 

얼마 전 한국 음식 상차림을 다운 받아 헬퍼에게 보여주며

우리나라 사람은 반찬 숫자가 이 정도는 돼야 밥 잘 먹었단 소릴 한댔더니

그 이튿날부터 반찬이 두 배로 늘었다는 겁니다.

이 사건? 이 후 아침 밥상에 된장찌개는 물론 부침개까지 내 놓는

헬퍼를 볼 때마다 내가 왜 그렇게 미안한지-

아무튼 요즘은 필리핀서 제대로 호강하며 살고 있습니다.

 

-근디 아우야 너 그거 아냐.

반찬 그릇 많아 진 것 만큼 식비가 팍팍 나간다는 사실을.

어쨌든 매끼마다 밥상에 놓인 반찬가지 세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